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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나원쟁박사(이붕총리 경제고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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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나원쟁박사(이붕총리 경제고문) 인터뷰

입력
1992.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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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외제차 보기힘든데 놀라”/양국 수교는 필연… 주변여건 중요/기업 중국진출욕 크나 이해부족/개방개혁정책 불구 사회주의 지향은 불변한중 수교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붕 중국총리의 경제고문으로 알려진 나원쟁박사(67)가 최근 한국을 다녀갔다. 지난달 22일 방한,보름동안 머물면서 목포,전주,광양 등 주로 서해안 지역을 둘러본 나 박사는 한국에서 외제차를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자국산업을 발전시킨 한국인의 노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이번 방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앙에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어떻게 방문하게 됐으며 방문 목적은 무엇입니까.

『한중 문화협회(회장 이종찬의원) 초청에 따른 민간교류 차원의 방문입니다. 나로서는 처음인 한국방문이 이루어진데는 개인적인 인연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지난 42년 공화합작시절의 중국과 한국의 임시정부간에 중한 문화협회가 창설됐었는데 이 협회의 명예회장이 바로 나의 장인인 팖옥상장군이었습니다. 임시정부측에서는 현재 한중 문화협회 회장으로 있는 이종찬의원의 종조부인 이시영선생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이 계기가 되어 한중 문화협회의 초청으로 처 빙이달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나 박사는 개혁개방정책의 입안에 중요역할을 했으며 현재에도 이붕총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 박사의 방한에는 개인방문차원 이상의 목적이 담겨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사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짧은 기간 둘러본 인상으로는 한국인들 역시 우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또 한국인들의 중국진출 욕구는 대단히 높으나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전주에서 만난 한 연필공장의 사장은 지난 90년 아시안게임당시 단신 중국으로 건너가 갖은 우여곡절끝에 북경의 금성공장 관계자를 만나게돼 합작을 성사시켰다고 합니다. 중국경제의 운영실태를 잘안다면 합작성사까지 2년간의 기간은 훨씬 단축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기업이 겪게되는 이러한 유의 애로를 해소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선 전인대·정협위원의 자격으로 한국방문 결과를 중앙에 보고할 것이며 내가 관계하고 있는 단체 및 지역사회에 대한 순회강연을 통해 한국의 실상을 알리려고 합니다』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기업인들이 애로를 겪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과 중국간에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중 수교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양국 수교는 역사발전의 필연적 추세입니다. 그렇지만 수교는 상호양보와 이해를 통해 성취될 수 있습니다. 또 한중수교는 양국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과 북한,한국과 북한,중국과 북한,중국과 대만과의 관계 등 주변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안문사태이후 개혁개방정책이 주춤했다가 최근들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듯한 인상입니다. 개혁개방정책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후티했다고 보는 것은 중국경제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조자양 전 총서기의 측근 경제학자들은 재정적자와 통화팽창정책을 통해 중국경제를 자극하려 했습니다. 에어컨,컬러TV,자동차 등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외국으로부터 이들 제품들을 마구 수입했습니다.

이 때문에 철도·운수 등 사회간접자본에 재원부족으로 제대로 투자를 하지못했으며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습니다. 또 경제 각 부문의 발전이 부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공업은 20% 성장한 반면 농업은 투자부족으로 계획에 훨씬 미달했습니다.

천안문사태 이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한 이른바 「치리정돈」 기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을 침체,혹은 개혁개방정책의 후퇴로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우리는 맹목적인 수입을 규제했으며 국내수요를 합작기업의 생산을 통해 충당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증가하는 자동차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북경,상해,천진,그리고 중경에 각각 미국,독일,일본,프랑스 등과 합작하여 자동차 공장을 세운 것이 이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경제를 둘러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한국이 자국상표의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공업을 발전시킨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외제차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은 내게는 충격이었으며 또 각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대부분이 한국제라는 것도 역시 놀라웠습니다.

물론 외국기술을 도입했겠지만 국내수요 충족뿐만 아니라 이들 제품들을 국제시장에 내다팔 정도로 공업을 발전시킨데 대해 한국민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은 자본주의화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세 생각하십니까.

『중국이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은 소유제의 골간이 여전히 국가소유제라는 사실에서 분명해집니다. 개혁개방 이후 우리는 여러가지 소유제를 발전시켰으나 그 중심은 여전히 국가소유제입니다.

공산화 이후 11억4천만명의 인구가 굶주리지 않게된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공산화이전 35세밖에 안됐던 중국인 평균수명이 이제 75세입니다. 자본주의 방식으로는 이런 일을 결코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산주의를 중국보다 먼저 실천한 소련은 이제 명백히 자본주의정책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소련의 경제체제는 개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진 체제였습니다.

소련에서는 공사가,노자가 같이 이익을 볼수 없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는데 이 점이 중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맹기간중 4인방 세력들이 이러한 주장을 펴며 정책을 오도하는 바람에 10여년간 중국경제가 크게 후퇴했었습니다.

소련에서 무너진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교조주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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