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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제도 이대로 둘 것인가/양건 한양대교수·법학(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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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제도 이대로 둘 것인가/양건 한양대교수·법학(시사칼럼)

입력
1992.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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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선정을 매우 조심스럽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중앙당의 우리는 공천문제에 대해 당신들이 애써 지켜온 권리를 간섭하지 않습니다. 만일 요청이 있다면 우리는 조언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영국의 정당에서 의원후보자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설명하는 글 가운데 나오는 한 대목이다. 보수당 중앙당조직의 의장이 한 지역조직에 대해 발표한 성명서의 한 구절을 그대로 소개해놓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대목이 말하려는 것은 중앙당 아닌 지역조직이 후보자 선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조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는지도 궁금한 관심사인데,지역조직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최종결정권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비단 영국만이 아니다. 구체적 방법에 차이가 있고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방식이 달라지지만,공천과정의 민주적 성격은 서구의 모든 나라에 공통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리할 정도로 오랫동안 신문의 많은 지면이 여야의 공천과정에 관한 보도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인지,아니면 독자의 흥미거리라고 생각해서인지,또는 둘다 해당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건성으로 읽고 난 뒷맛은 씁쓸하고 허탈하다. 한마디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흔한 말로 혹시나 했지만 역시 그대로이다. 계파·지분·밀실·전횡,그리고 돈­이런 냄새나는 말들로 가득할 뿐이다.

특히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진 공천심사장의 풍경은 몹시 희화적이다. 호텔 방에서 운동복을 입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들은 차라리 희극적이다. 가장 공적이어야 할 과정이 가장 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듯하다.

과연 공천제도를 이대로 놔두어도 좋을 것인가. 정치는 으레 그런 것이려니 치부해버리고 말 것인가.

국회의원 공천을 당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경선에 의해 정하자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옳은 얘기다. 다만 현재의 우리의 정당 현실을 두고 볼 때 경선을 하더라도 문제는 적지 않을 것이다. 경쟁에 따른 온갖 잡음이 있을 것이고 특히 경선 자체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것임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도 정당조직이 시민들에 뿌리박은 근대적 정당체질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의 공천제도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경선제도에 문제가 있더라도 비교컨대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며,또 그것이 원칙에 맞는 개선의 방향이다. 우리 헌법에도 정당의 조직과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원공천이 정당 우두머리에 의해 좌지우지된대서야 어찌 이를 민주적 제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정당들이 후보자 경선제도를 스스로 채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당의 내부 조직이나 제도는 가급적 정당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당이 자율적으로 민주적 제도를 채택할 의사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법이 개입할 수 밖에 없다.

이 점에서 독일의 제도는 좋은 참고가 된다. 독일 선거법에 따르면 의원후보자의 공천은 당원 또는 그 대표자들의 비밀투표에 의하도록 못박고 있다. 특히 「비밀투표」에 의해야 한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지구당의 당원대표자기구에서 비밀투표로 후보자가 선정된다면 당장 실시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원칙을 살리는 방향에서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야 한다.

전국구후보의 경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지억구후보의 경우에는 유권자의 최종 심판의 기회나마 남아있다. 그러나 전국구후보의 경우,그 후보자 선정이 아무리 잘못 되었더라도 유권자들로서는 전혀 어쩔 도리가 없다. 전국구후보 명부에 대해 유권자의 의사를 나타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전국구후보에 대한 별도의 정당투표제가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이미 제도에서부터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국회나 정부에 중립적인 「정치제도개혁심의회」를 두어 중지를 모아야 할 터인데,과연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얼마나 개혁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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