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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부터의 저항」… “위기의 옐친”/대규모 반옐친 시위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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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부터의 저항」… “위기의 옐친”/대규모 반옐친 시위 안팎

입력
1992.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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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자유화로 민심이반 확산/정권기반세력 분열… 혼란재촉/체제재편 과도기현상… “퇴진임박”은 시기상조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명실공히 크렘린의 주인이 된지 달포만에 「개혁역풍」에 휘말려 최대 정치위기를 맞고 있다.

옐친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전격 시행한 가격자유화정책이 대규모 반옐친 시위라는 「밑으로부터의 저항」에 부딪쳐 옐친정권의 결정적 패착으로 굳어지면서 그를 벼랑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옐친 대통령을 옹립한 「민주러시아」 등 범민주세력마저 가격자유화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극도의 분열상을 보임으로써 크렘린의 지각변동을 재촉하고 있다.

옐친정권을 위협하는 「밑으로부터의 저항」은 지난주말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서 극명히 표출됐다.

러시아 민족주의자 및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옐친 시위대는 『옐친 퇴진』 『옐친은 소련을 팔아먹는 유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모스크바시내를 행진했다. 이같은 모습은 비록 시위성격은 다르지만 과거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을 궁지로 몰았던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연상케 했다.

더욱이 이날 시위에는 옐친정권의 가격자유화와 이에따른 물가폭등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대거 참가,옐친정권에 대한 민심이반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달 12일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했던 반옐친시위 당시와 비교해볼때 더욱 두드러졌다는 지적이다.

옐친정권의 취약성은 최근들어 심상찮은 군부움직임에서도 감지된다.

구 소련의 군기관지인 크리스나야 즈베즈다지는 4일 옐친 대통령의 대폭적인 핵무기 감축계획에 대해 국가안보를 위기로 빠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러시아 대통령의 최고위 국방보좌관인 콘스탄인 코베츠장군은 『CIS 군장교들의 불만이 폭발지점에 이르렀다』고 전제,『군부의 불만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옐친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의 집권기반이 가격자유화 정책을 계기로 서서히 와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옐친정권을 지탱하는 트로이카로 일컬어지는 민주러시아와 에카테린부르크 마피아,민주개혁운동 등 세 파벌이 각기 자파의 이익에 따라 권력투쟁을 계속해 정권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옐친 대통령은 당초 부르불리스 부총리를 정점으로 한 에카테린부르크 마피아와 가이다르 부총리 등 급진개혁 경제학자를 대거 등용시켜 야심적인 가격자유화정책을 시행에 옮겼다.

그러나 정책집행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구 소련의 관료집단이 조직적으로 반발함으로써 가격자유화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후유증만 증폭시키고 있는 상태이다.

이같은 상황을 옐친 대통령의 실정으로 비판하고 나선측은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부통령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구 소련 외무장관 등이 이끄는 민주개혁운동. 루츠코이 부통령은 옐친 대통령의 경제실책을 높은 강도로 비판해오다 8일에는 현 경제파국 극복을 위해 『단 1년만이라도 러시아전역에 경제비상사태를 선포하자』는 극약처방을 제시하기도 했다.

민주러시아 지도부의 일원인 소브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시장과 포포프 모스크바시장도 『옐친 대통령의 충격요법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환자를 죽이려하고 있다』며 목청을 돋우었다. 이는 옐친정권의 3각중 2각이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옐친 대통령의 외곽지원 세력으로 분류돼온 최고회의의 반기도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다. 옐친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령이 최고회의에서 번복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고회의는 지난해 11월 체체노잉구슈 자치공화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와 진압군파병을 결정한 대통령령을 무효화시켰으며 지난해 12월에는 내무부와 보안성의 통합결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특히 러시아 최고회의는 최근에도 부가가치세를 대폭 인하,부가가치세 증액으로 재정을 충당하려던 옐친의 계획을 좌절시킨데 이어 옐친 대통령의 각료임면권마저 박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옐친 대통령의 퇴진이 임박하다고 보기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모든 정권 출범과정이 그러하듯 옐친 대통령도 크렘린의 새 주인이 된지 달포밖에 지나지 않아 얼마간의 혼란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옐친 대통령을 대체할 만한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루츠코이 부통령이나 소브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시장,군산복합체를 대표하는 보리스키 과학산업동맹회장 등 옐친 대통령의 뒤를 이을만한 인물들도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옐친정권을 위기로 몰고있는 제반상황은 구 소련 붕괴와 독립국가연합(CIS) 체제의 정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권력재편의 과도기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탈소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라트비아 인민전선의 이반스 의장이 최근 라트비아 최고회의 부의장직에서 물러나고 에스토니아에서도 사비사르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한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옐친 대통령이 이같은 권력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것인지 아니면 주도권을 빼앗길 것인지 여부는 그의 정치지도력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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