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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구락부/갈비집 변한 “한국정치 막후무대”(그때 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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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구락부/갈비집 변한 “한국정치 막후무대”(그때 그자리)

입력
1992.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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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대통령·허정·김영삼씨 단골/유신반대 성명후론 야당인사 본거지로/「40년 영화」 10여권 방명록에 고스란히40여년동안 한국정치의 막후무대로,상류층의 사교장으로 각광받던 서울 남산기슭의 외교구락부는 현재 야외예식장겸 갈비·냉면·전문한식집으로 변했지만 옛 「영화」속에 수많은 비사를 간직하고 있다. 내노라하던 유명인들도 예약하기가 힘들었던 외교구락부는 건물과 마당의 수령 4백년짜리 향나무 등 외형은 옛날과 변함이 없으나 지금은 숯불갈비 전문점으로 단체예약을 환영하는 여느 대중음식점과 다를바 없다.

8촌동생에게 운영권을 넘겨준 외교구락부 전 대표 이병태씨(72)는 『70년대들어 호텔 양식당이 늘어나고 유명세 덕분에 손님들의 발길도 끊겨 88년 7월 수절과부 개가하는 심정으로 외교구락부의 영업스타일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외교구락부는 49년 4월 윤치영씨 등 정·재계인사 몇몇이 뜻을 모아 사교클럽 형태의 양식당으로 문을 열어 전 대표 이씨가 운영토록 했다.

초기에는 옥호를 직접 지은 윤씨를 비롯,조병옥 장택상씨 등이 지정석을 정해놓고 드나들었으며 윤보선 전 대통령 허정 김영삼씨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대지 1천2백여평에 1백40여평의 단층건물은 분위기가 조용하고 음식맛이 뛰어나 정치인들에게는 오찬과 만찬을 곁들인 밀실정치의 장소로 안성맞춤이었으며 문화예술인 학계 재계인사들은 사교장으로 애용했다. 단골들의 면면은 정치격변기를 지내면서 바뀌어갔다.

6관구 사령관취임 축하연을 이곳에서 가진 박정희소장도 5·16직후 김종필 박종규 김재규 김형욱 등과 가끔 모습을 비쳤다.

10월 유신 이후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석헌옹 김대중 김영삼씨 등이 유신반대 성명을 외교구락부에서 발표한 뒤 야당인사들의 「본거지」가 되어 84년에는 민추협 창립총회도 여기서 열렸다.

특히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외교구락부와 인연이 깊다.

장택상씨 비서관시절이던 51년부터 이곳을 드나든 김씨는 83년 5월 여기에서 단식투쟁을 선언했고 87년에는 김대중씨와 대통령후보 단일화 논의를 위해 자주 회동하기도 했다.

외교구락부 전 대표 이씨는 개업초기부터 지배인으로 있다 77년부터는 직접 경영을 맡았다. 이씨는 『웬만한 정치인과 유명인사의 식성이나 테이블매너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주요한 회식이나 연회가 자주 열려 누구보다 정국의 변화를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외교구락부는 개업한지 두달만에 국회의장이 주재한 오찬회식때 맥주를 내놓았다가 이기붕 서울시장으로부터 즉석에서 「낮에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어겼다」는 질책을 받고 1주일간 영업정지를 당한 일도 있다.

업종 변경후 박흥식씨 등 오랜 단골들로부터 위로전화를 받으며 허전함을 달랬다는 이씨는 『앞으로는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이 사랑하는 장소로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씨의 8촌동생 병재씨(53)는 『지금도 업종이 바뀐줄 모르고 형님을 찾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면서 『옛날 경비요원이던 경찰이 간부가 되어 찾아와 고생담을 할때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82년에는 일제때 일본인 저택이었던 외교구락부 정원에 마약상자가 묻혀있다는 첩보가 있다고 정보기관이 3차례나 마당을 파헤치며 법석을 떨기도 했다.

외교구락부의 40년 역사는 10여권의 방명록에 남아있다.

82년 6월 김수환추기경은 방명록에 「상선약수」라는 휘호를 남겼고 이병철,정주영,박흥식씨 등 재계인사와 김옥길,이희승씨 등 학계인사들의 서명이 아직도 선명하다.

외교구락부는 정원이 아름다워 지난해 TV드라마 「야망의 세월」과 몇편의 영화무대로 사용됐다.

89년에는 야외결혼식장도 꾸며 지난 1년동안만 80쌍이 결혼식을 올려 3만여명의 하객들이 다녀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외교구락부의 「명성」은 숯불갈비의 냄새와 야외결혼식장의 박수소리속에 대중화돼 가고있다.<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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