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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합의서」와 국회동의/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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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합의서」와 국회동의/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특별기고)

입력
1992.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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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4일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총리회담에서 서명된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오는 2월19일 정식 발효를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남북관계를 특별관계로 규정한 이 합의서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국제법상 조약의 성격을 띠느냐,아니면 단순한 정치적 강령의 의미를 갖느냐를 둘러싸고 해석이 구구한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12월26일 그들 나름대로 국회의 동의를 받은후 한국의 국회비준 동의지연에 항의하고 있어 합의서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합의서의 법적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그런면에서 동서독의 기본조약은 좋은 예가 된다.

당시 2민족 2국가 이론으로 통일을 부정했던 동독은 기본조약을 국제법상 조약으로,서독은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를 규정한 잠정 협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동서독은 기본조약을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강령으로는 보지 않았으며,국회의 비준 등의 절차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서독 야당이었던 기민당은 기본조약이 포함하고 있는 단독대표권 포기,영토한정의 원칙 등이 독일의 영구분단을 갖고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격렬히 반대했다. 서독 하원은 이같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3년 5월11일,기본조약을 2백68대 2백17로 비준,동의했다. 그러나 서독은 이 기본조약이 분단조약으로 해석되는 것을 막기위해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이용하며,통일의 법적 길을 열어 놓았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기본조약은 2중적 성격을 지닌다고 전제,형식에서는 국제법적 조약이나,내용에서는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를 규정하는 잠정협정(Modus vivendi)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연방헌법재판소는 동서독간 정치적 관계를 규정하는 동독과의 조약은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고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서독의회는 기본조약체결 이전인 1972년 5월17일 여야를 초월하여 동방정책 지지결의를 했다. 이처럼 동서독 관계 개선에서 서독의회는 중요한 굽이마다 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국민이 동서독 관계를 결정하는 주체자로서 참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또 정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기본조약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국민과 야당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독은 동서독간의 부속조약은 의회의 비준을 받지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기본조약 제7조에 아울러 마련해 놓았다. 즉,동서독은 기본조약 제7조에 『…이에 대한 세부사항은 추가의정서에서 정한다』는 부속문서 위임조항을 단서로 삽입함으로써 기습적으로 해결했다. 그후 부속문서는 약식조약으로 정부대표간의 서명만으로 발효됐다. 물론 우리 합의서는 동서독 기본조약과는 달리 제25조에서 「비준동의」를 명문화하고 있지 않고,단지 남북이 각기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각기 필요한 절차」란 각자의 국내법상 조약체결 절차이다. 따라서 이 기본합의서 본문만은 남북관계의 주체자로서의 국민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국회의 정식동의를 받고,추후 부속문서는 합의서 24조 수정조항에 근거한 부속문서 위임조항으로 당국에게 간편한 절차를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 합의서의 대부분 조항은 국민의 재정적 부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서는 헌법 제60조 1항에 따라 국회비준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합의서는 평화적 민족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즉,법적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합의서가 「제2의 7·4공동성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합의서의 법적 성격은 정치적 강령보다는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으로 취급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서가 국민의견 수렴과정과 국회에서 여야간의 토의과정 조차도 없이 소홀히 취급되는 감이 없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3월 총선을 앞두고 모두 선거운동에 바빠,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으며,정부는 이 기회에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동의없이 남북관계에서 독주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국회의 참여없는 이러한 정부 단독의 남북관계 개선은 사실 통일을 정권유지에 이용했던 과거 역대 정권들의 행적을 연상케 한다.

국회의 참여없이 이루어졌던 1972년 7·4공동성명은 바로 유신체제로 이어졌고,국민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해야 했다. 때문에 민족역사에 굵은 획을 긋게 될 이번 합의서에는 반드시 국회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주권자의 대표로서의 국회는 이번 합의서에 대해 아무런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 국회는 지금 그들의 헌법상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국민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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