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분종사태 갈수록 혼미/「1사2주지」 양상… 곳곳 분쟁/양측 기득권 다툼으로 돌파구 못열어/90년 종정추대 시비서 발단… 최대 위기에우리 불교의 얼굴 조계종이 분종상태에 접어든지 5개월째를 맞고 있으나 화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종단이 강북(원장 서의현스님)·강남(원장 채벽암스님) 총무원의 기형체제로 두동강이 난것은 조계종의 「큰 어른」인 종정을 모시는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이 종권다툼으로 변질되면서 비롯됐다. 강남북 양총무원은 그동안 화합의 접합점을 찾기위한 대화를 간헐적으로 가져왔지만 양측 모두 기득권 방어에 집착한 나머지 성실한 자세를 보이지 않아 조계종은 62년 통합종단 출범이후 최대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분종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파행적인 행정사례가 하나둘씩 튀어나와 종단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부산 범어사 주지에 강남측 총무원이 화암스님을 임명하자 강북측은 정관스님을 내세워 한사찰에 두명의 주지가 들어앉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또 올 상반기에 주지 임기가 끝나는 신흥사 용주사 법주사는 모두 강남측지지 사찰이어서 강북측에서 별도의 주지를 임명할 경우 물리적인 충돌도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종단이 혼미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강북측 입장을 대변해온 원로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회의를 열어 「9대 종회해산과 10대 종회구성」을 결의,종단은 또다른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지난달 30일 강북측 총무원 불교회관에서 개최된 원로회의는 종단분규 수습의 일환으로 9대 종회를 해산하고 10대 종회를 조기 구성키로 결의했다.
당초 이날 원로회의에는 강남측 총무원을 지원해온 서운스님(강화 전등사조실) 벽암스님(강남총무원장)과 불국사조실 월산스님 등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의장소 문제로(이들은 불교회관이 아닌 제3의 장소를 주장) 끝내 불참했다. 원로회의에서 중립적인 일부 스님은 더큰 불행을 야기할지도 모를 9대 종회 해산 반대론을 펴기도 했으나 회의의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원로회의에는 원로회의 구성원으로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는 월하스님(통도사조실)과 관응스님(직지사조실)이 불참했는데 원로회의가 이 시점에서 화합보다는 파국을 부를 가능성이 절대적인 9대종회 해산 카드를 내민 배경에 대한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원로회의의 이같은 결정이 종헌·종법을 무시한 초월권적인 행위라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오늘의 분종사태를 가져온 직접적 원인이 종정추대 과정에서 서의현원장(분종이전의 총무원장)과 원로회의가 종헌·종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여론의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터에 예상치 못한 원로회의의 9대종회 해산카드는 또다시 종헌·종법논쟁을 가열시킬 전망이다.
원로회의는 지난해 종정추대를 앞두고 지난 88년 개정돼 2년넘게 시행돼온 종헌이 종정추대권한을 원로회의에서 종정추대위로 넘긴 조항 등을 문제삼아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9대종회의 위상에 대해 종단 안팎의 대체적인 여론은 9대 종회가 임기가 끝나는 오는 8월31일까지 기능이 살아있으며 종권 창출의 유일한 기구인 종회를 중심으로 종단의 현안을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 종헌에는 종회해산 규정이 없고 단지 종헌에 없는 사안은 일반관계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관례의 대표로 인정될 수 있는 국회법을 원용할 경우 종회해산은 어디까지나 종회의 결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원로회의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종회가 해산됐을 경우에 한해서만 종헌이 규정하고 있는대로 종회의 권한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해석에 따르면 결국 9대 종회해산을 비롯한 원로회의에서 결의된 모든 내용이 불법인 셈이다.
강남측 총무원은 원로회의가 또다시 무리수를 둔것은 그 뒤에 서의현원장이 있으며 서 원장은 종단의 현재 위기상황의 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원로회의를 앞세워 화합의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불교계는 강남측의 그러한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것은 아니라고 보고있다. 즉 원로회의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몇몇 원로와 서 원장은 종정추대 문제를 비롯한 몇가지 점에서 서로 맞물린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원로회의가 늘 강북측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불교계의 시각이다.
지난 1월10일 신임 이수정 문화부장관의 중재로 서 원장과 채 원장이 극적으로 합의한 분종수습 방안이 원로회의에 의해 파기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시 양측은 강북측 승려대회(91년 7월 해인사)와 강남측 승려대회(91년 9월 통도사)에서 표출된 공통분모가 제도개혁임을 내세워 강북측 10명 강남측 10명 중도세력 10명 등 30명의 제도개혁위원회를 구성,공통의 개혁안을 오는 3월10일까지 9대 종회의 결의를 거쳐 시행함으로써 분종수습의 토대를 마련하기로 합의했었다.
불교계는 몇차례의 화합시도가 물거품으로 끝나고 분종사태 수습을 위해 종회를 소집하라는 여론이 외면당한채 오히려 원로회의를 통해 9대 종회해산 문제가 돌발변수로 튀어나온 배경은 「서 원장 퇴진」 문제와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원로회의가 불교의 자주성 훼손을 명분으로 삼아 파기한 정부중재의 수습방안이나 종회소집이 실천에 옮겨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론될 「서 원장 퇴진」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는 3월로 예정된 결산종회는 9대 종회의 임기 만료를 앞둔 중요한 시점이어서 서 원장은 3월 종회를 피하는 명분으로 원로회의를 움직여 9대 종회해산에 이은 10대 종회 구성카드를 내놓게 했다고 강남측은 진단하고 있다. 10대 종회를 확실하게 서 원장지지 세력으로 구성하겠다는 저의라는 것이다.
한편 강남측 총무원은 곧 기자회견을 갖고 분종의 원인행위를 제공한 서 원장과 원로회의의 종헌·종법 무시행위를 또다시 강조하는 한편 9대 종회해산 결의를 비롯한 강북측의 불법적(강남측 주장) 행위에 대해 법리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종사태의 단초는 90년 6월 총무원장 선출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계종사상 처음으로 4년 임기를 끝낸 서 원장은 재선과정에서 강남측의 주도세력인 덕숭문중 종회의원들에게 자신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성철 종정스님의 후임에 덕숭문중의 수장 월산스님을 밀겠다는 약속을 파기한데서 현재의 위기가 잉태됐다는 의견이 종단안팎의 정설이다. 덕숭문중은 서 원장에 도전한 같은 문중의 월탄스님(법주사주지)을 희생시키면서 서 원장의 재선에 도움을 주었으나 서 원장이 향후 자신의 입지를 고려,성철스님의 연임을 바라는 원로회의와 행보를 같이하게 되면서 종정추대 문제는 뒷전에 밀려나고 종권 다툼의 양상으로 발전해 갔다. 이에따라 서 원장 지지진영대 반 서원장 진영의 양극 구도로 나누어진 종단은 지난해 각각 별도의 승려대회를 개최했으나 분규의 수습 방안을 찾지 못했고 결국 9월 반 서원장 진영의 통도사 승려대회를 기점으로 분종상태에 들어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원로회의는 성철스님의 공개적인 종정재추대 반대선언에도 불구하고 종정에 재추대했으나 성철스님은 지난해 연말 유례가 없이 종정의 신년법어를 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심정을 표시했다.
대다수 불자들과 중립적인 스님들은 종단이 정상을 찾을수 있는 방법은 강남북 양측 모두가 기득권 집착을 버리고 초발심의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길뿐이며 종단이 이 사태까지 가도록 방관자세를 보여온 성철 월하스님 같은 존경받는 스님들이 수습의 전면에 나서야된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이기창기자>이기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