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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2천만원 희귀란 도난소동(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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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2천만원 희귀란 도난소동(등대)

입력
1992.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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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야산에서 채취한 「달마중압호」/아름다움에 눈먼 고객소행 고통만 더해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의 난화원인 「금란원」 주인 김항영씨(34)는 독신으로 사는 이유를 『난과 이미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왔다.

난을 가꾸고 보살피는 일이 사는일의 전부일 정도로 난을 사랑하는 김씨는 이제 『난이 두려워졌다』고 말한다. 『인간을 위해 가꾼 난이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회한때문이다.

지난 4일 설날에 난을 매만지며 고향 함평생각에 잠겨있을때 평소 고객으로 잘알고 지내는 장모씨(34·회사원)가 들러 함께 술잔을 주고 받으며 회포를 달랬다.

다음날 술에서 깬 김씨는 진열장에 있던 희귀란 「달마중압호」 2촉짜리 화분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난은 지난 88년 자신이 직접 전남 야산에서 채취한 「보물」. 「달마중압호」란 이름에서 나타나듯 날렵한 초록색 잎끝이 달마의 얼굴처럼 둥글고 잎중간에 흰선이 산뜻하게 그어져있어 빼어난 미인이면서도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이 자생지이면서도 그동안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진귀한 종류이다.

지난 4년동안 이곳을 찾은 숱한 난애호가들이 「달마중압호」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보고 촉당 1천만원이라는 엄청난 값을 제시하며 끈질기게 팔라고 졸라댔어도 끝내 거절해왔다.

1천여점에 이르는 소장란을 몇번이나 되짚어보던 김씨는 경찰에 도난신고를 냈다.

잃은 난생각에 식음을 전폐하고 상심하던 김씨는 6일 은평경찰서로부터 『난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죽은 자식이 살아돌아온듯 기뻐했으나 이내 함께 술을 마시던 장씨가 범인으로 구속됐다는 사실에 또한번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 83년 전남 목포대 경영학과에 뒤늦게 입학한 뒤 우연히 일본서적을 통해 난의 세계를 알게되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더구나 고향 함평이 우리나라 최고의 자생란 산지라는 것도 큰 계기가 됐다.

김씨는 난이 갖고있는 매력을 한마디로 『마력』이라고 표현한다. 섬세한 잎의 선에는 온갖 형용사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묘한 아름다움이 있을 뿐더러 워낙 손이 많이 가기때문에 도를 닦는 듯한 정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겉으로 화려하고 기르기 쉬운 서양란과는 기품과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수년전 문을 연 그의 화원안에는 「달마중압호」뿐아니라 시가 1억원을 호가하는 「중투복색화」 등 진귀한 것들이 있다.

김씨는 이날 경찰에 수없이 장씨의 선처를 당부했으나 허사였다.

『난을 사랑하다보면 충분히 그럴수 있는데 경찰이 이해를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화원의 문을 걸어잠그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있다.<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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