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다이애너비 외제차 장만 물의/「국산차 사용」 왕실의 불문율 파기/“극심한 불황… 늘어나는 실업자 모독행위” 거센 비난【런던=원인성특파원】 6일로 즉위 4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의 며느리들이 요즘 들어 잇달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둘째 아들 앤드루왕자의 부인인 퍼거슨은 원래부터 자유분방하고 사치스런 행동때문에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들의 주요소재가 되곤했다. 퍼거슨은 얼마전 미국의 젊은 석유재벌과의 관계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퍼거슨의 스캔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국민들이 워낙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은 탓인지 잠시 가십거리 정도로 화제에 오르다 곧 잠잠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여왕의 대관기념일을 앞두고 언론에 보도된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사건(?)은 차원이 좀 다른 것같다. 퍼거슨의 품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더 받아왔고 장차 왕비가 될 인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인지 국민들의 눈초리는 더욱 따갑다.
사건은 아주 단순하다. 다이애너가 이미 갖고 있던 영국제 재규어 스포츠카를 팔고 독일제 벤츠 스포츠카를 임차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애너가 빌린 메르세데스벤츠 500SL 스포츠카는 최대시속이 1백57마일(2백51㎞)로 가격은 7만2천파운드(약 1억원)에 이른다. 임대비용은 보통 한달에 1천5백파운드(약 2백10만원) 정도인데 정확한 임대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이애너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공식행사용으로 재규어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는 그녀가 개인용으로 그렇게 엄청나게 비싼 차를 사용할 필요가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차 한대 값만도 웬만한 집 한채값에 버금가고 한달에 들어가는 임차사용비가 보통 월급장이들의 한달 수입에 맞먹는 비싼차를 경제불황으로 실업자가 속출하고 집이 없이 추위에 떠는 빈민이 늘어나는 판에 장만한 것은 국민적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비난의 이유는 다이애너가 장만한 차가 외제차라는데 있다. 영국왕실은 지난 30년대 이후 외제차를 안타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경제공항이 극심했던 당시의 국왕 조지5세는 영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왕족들이 외제차를 사용하지 않도록 했는데 영국산 차보다 외제차가 범람하는 요즘까지도 이 전통은 철저하게 지켜져왔다. 다이애너는 이러한 전통을 깨뜨린 첫번째 왕실가족이라는 점과 그 시점이 불황으로 실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때라는 사실때문에 더욱 비난을 받고 있다.
다이애너의 외제차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많은 국민들과 정치인,노동자들은 민감한 즉각 반응을 보였다. 왕실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한 보수당 정치인은 『값은 차치하고라도 그녀가 국산차를 구입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완곡하게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노동당의 데니 스키너의원은 『국민의 세금을 갖다쓰고 있는 왕실가족이 값비싼 외제차를 장만한 것은 영국 노동자를 모독한 행위』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자동차노조의 간부인 지미 에어릴은 『다이애너의 처사는 좋게 말하면 지각없는 짓이고 심하게 말하자면 비애국적』이라고 성토했다.
아직도 귀족들이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는 계급사회가 유지되고 있고 우리네 같은 외제의 개념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영국사회에서 다이애너의 비난을 사는 것은 얼핏보면 잘 납득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비판의 소리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영국국민들은 왕가에 애정을 보내는 대가로 그들에게 영국적인 삶의 모범을 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난 특권과 영예와 국민들의 사랑을 계속 얻기 위해서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생활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며느리들의 잇단 탈선 때문에 엘리자베스여왕은 즉위 40주년을 그리 즐겁지 못한 기분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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