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지금 본격적인 선거정국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이다.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대략 4월초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어 선거시기도 우리와 거의 비슷하다.하지만 두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선거정국의 양상은 전혀 딴판이다. 서울에서 오는 국내 신문들을 보면 우리네 관심은 온통 공천에만 쏠려있는 것 같다. 더욱이 누구는 어느 계파몫이라느니,탈락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벌인다느니 하는 고질적인 공천파동 소식을 접하고 보면 아직도 우리정치가 인물중심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까지 갖게된다.
한국적 선거행태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영국의 분위기는 낯설다 못해 이해가 잘안될 정도이다. 이제 선거일이 경우 두달 남짓 남았건만 도대체 공천에 관한 얘기는 들어볼 수가 없다. 오히려 때 이르다 싶을 정도로 세금문제를 놓고 뜨거운 논전만 거듭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인즉 이러하다. 집권당인 보수당은 복지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되 25∼40%에 이르는 소득세율을 인하 하겠다는 것이고 노동당은 의료 혜택을 비롯한 복지정책을 더욱 확대하고 그 재원은 40%인 부유층의 소득 세율을 50%까지 높여서 충당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당의 정책대결은 수치를 앞세운 양측의 공방과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입장이 갈리는 신문들에 의해 갈수록 불꽃을 튀기고 있다. 정치적인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텔레비전에는 거의 날마다 두 당의 경제전문의원들이 나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며 유권자의 이해를 구하려하고 있다.
두당의 선거논쟁중 압권은 지난주 공개한 노동당의 포스터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재무장관의 얼굴에 유명한 영화 배트맨(BATMAN)의 가면을 씌워놓고 배트맨(VATMAN)이라 이름붙여 놓은 것이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17.5%씩 붙는 부가가치세(VAT)란 단어를 활용한 코믹한 포스터로 보수당이 소득세는 낮추겠다면서 복지정책은 그대로 시행하겠다니 결국 부가가치세를 올리겠다는게 아니냐고 꼬집는 내용이다.
정권이 오가는 의원내각제하의 총선인데도 이처럼 영국의 선거정국에는 긴장감보다는 여유가,사생 결단의 비장함보다는 유머와 위트까지 감돌고 있다. 더욱이 싸움의 내용은 피부에 와닿는 정책에 관한 것이지 인물에 관한것은 거의 눈에 띄지않는다. 물론 수백년의 의회정치 뿌리를 갖고 있는 영국의 상황을 우리와 곧바로 비교하는데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렇긴해도 마치 왕조시대의 붕당정치를 연상케하는 우리네 공천파동은 너무 시대에 뒤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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