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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주도만한 나라?/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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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주도만한 나라?/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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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서울 영동의 한 호텔앞에서 택시를 탔다. 손님 한사람을 내려주고 나를 태운 50대의 운전사가 갑자기 『조그마한 섬나라놈들이 돈좀 벌었다고 더럽게 으스댄다』고 중얼거렸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왜놈이란 말이에요』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바로 앞에 내린 일본손님이 눈에 거슬리게 한 모양이었다.하도 오랫동안 중얼거리기에 『일본이 왜 조그마한 섬나라냐』고 슬쩍 튕겼다. 『그럼 일본이 조그마한 섬나라지 큰 나라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별 시덥지 않은 질문을 한다는 듯이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어투나 분위기로봐 일본을 제주도 정도쯤의 섬나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어이가 없어 『남북한 넓이가 22만㎢이고 그중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은 10만㎢이고 인구도 남한의 4천2백만명의 3배에 가까운 1억2천만명이 넘는다』고 설명하자 『뭐가 그렇게 크고 왠 왜놈이 그렇게 많으냐』며 화를 벌컥 냈다. 일본이 그렇게 큰 것도,인구가 그렇게 많은 것도 화가나고 마땅치 않다는 투였다. 그러한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실체를 이렇게 모르고,부인만 할 수 있는가란 자탄이 일었다. 『왜놈 왜놈』하며 감정만 앞세운 반일교육의 결과란 안타까움에 젖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근무할때 『일본사람들은 궁리를 잘하는 민족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 일이 있다. 이 기사가 나간후 한국에서 날아온 편지를 세통 받았다. 편지는 한결같이 『네이놈! 일본가서 조금 근무하더니 친일파가 다 됐다』고 꾸짖는 내용이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썼는데도 뜻밖의 반응이 찾아든 것이다.

당황했다. 솔직히 일본사람의 뛰어난 궁리성이 오늘 기술선진국 일본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일본상품의 오밀조밀함은 「트랜지스터상인」이란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주방기구 하나만 봐도 쓰기에 편리하게 온갖 궁리를 다했다. 감탄할 정도다. 그런데도 감정과 미움이 앞서 이같은 일본의 실체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정신대 문제도 보다 냉철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때문이다. 며칠전 일본사람과 점심을 같이 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미야자와(궁택) 일본총리의 방한과 정신대로 이어졌다.

정신문 문제에 관한한 한 그들의 관심수준은 한국사람들이 군 정신대와 근로정신대를 혼동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보상문제에 대해선 크게 반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시기에 정신대문제가 한·일간에 본격적으로 제기되게 된 배경을 한국국민이 어떻게 보고 있느나에 더 신경을 쓰는듯 했다.

그는 이야기중에 『일본측이 무역적자 등 한일간의 현안문제를 흐리기 위해 정신대 문제를 일부러 부각시킨 것으로 보는 시각은 없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함축적이고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질문이었다.

누가 들고 나왔든 정신대문제는 진상규명·보상 등이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을 죽이고 자료정리 등을 완벽히 하면서 일본의 실체를보다 정확히 살펴야 한다. 아쉽게도 미야자와 총리 방한때 일본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은 것 처럼 정신대 문제에 정신을 쏟다보니 무역적자·기술이전문제 등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아픈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생각할수록 아픔이 더해진다. 앞으로는 이런 아픔을 거울삼아 감정을 죽이고 일본의 실체를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제주도만한 섬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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