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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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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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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미·소 냉전기간중 핵전쟁 위험이 가장 높았던 62년의 쿠바위기는,미국의 젊은 대통령이 노회한 흐루시초프의 핵협박을 의연하게 물리쳤다는,케네디 신화의 한 꼬투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쿠바위기 30주년을 앞두고 새로 밝혀진 사실들은 좀더 미묘한 신화의 뒤안쪽을 엿보게 한다.그런 사실중의 하나가 85년 소련망명자 아카디 셰브첸코의 발설이다. 그에 의하면 흐루시초프는 61년 빈 정상회담에서 처음 만난 케네디를 연약한 풋내기로 판단했으며,그 오판이 쿠바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때까지 케네디는 줄곧 대소 강경정책을 펴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흐루시초프의 오판은 왜 나왔을까. 글라스노스트(공개정책) 이후의 소련측 자료까지 검토하여 『위기의 연대』(91년)를 쓴 미국의 젊은 외교사가 마이클 베슐로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흐루시초프와 케네디는 모두 국내 정치적인 입장이 취약했으므로 강경한 대외정책을 표방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이 점에 대한 이해가 있기를 바라면서도,상대방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임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열린 빈 정상회담에서,쿠바문제에 관한 케네디의 언급은 너무나 모호했다. 케네디의 「모호한 신호」가 흐루시초프의 오판을 불렀다는 분석이다. 분석이다. 결국 쿠바위기는 잘못 풀린 정상회담의 후과라는 얘기가 된다.

이런 것이 자칫 현안해결의 특효약으로 여기기 쉬운 정상외교·정상회담이라는 동전의 뒷면이다. 그 교훈은 「모호한 신호」의 위험을 일깨우는 함축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경우에,그런 「모호한 신호」는 계산된 것일 수가 있다. 이처럼 의도된 모호성의 위험은 전적으로 수신자의 부담이 된다. 근래 평양에서 발신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신호가 그런 것 같다. 방북기업인더러 노태우대통령을 빨리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 김일성의 말은,정상회담을 오히려 북측이 더 원하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공개된 인식과 일치하는듯 하지만,그 신호의 뜻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진담인가,대남 전용인가. 정상회담을 실현함으로써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아니면 정상회담이 금방 될듯이 내비치는 것만으로 무엇을 얻자는 것은 아닌가.

기실 우리는 김일성의 「모호한 신호」에 놀아난 적이 있다. 7·4공동성명에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평화통일 3원칙중 민족대단결을 말한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의 「초월하여」가 그런 것이다. 김일성은 처음 「덮어놓고」라고 했으나,그 말이 마땅치 않다고 여긴 우리측에서 절충끝에 찾아낸 말이 「초월하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것은 「모호한 신호」의 잘못된 번역이다. 「초월하여」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무언가 한 차원 높은 것을 지향하는 듯이 들린다. 퍽 논리적이다. 이에 대하여 「덮어놓고」는 「드러내지 않고 그대로 두다」(현대 조선말 사전)나 「따지지 않는다」(우리말 큰 사전)는 뜻으로는 「초월하여」와 근사하다고 할지 모르나,김일성과 같은 고향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내 감각으로 하면,그 뜻은 「앞뒤 가림없이」 「무조건」 「어거지로」에 더 가깝다. 일상의 흔한 그 쓰임은 『덮어놓고 돈만 내라고 한다』는 따위가 된다. 그러니 김일성이 말한 민족대단결과 7·4공동성명 문면의 민족대단결 사이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미묘한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우리 체제를 자기부정하는 논리를 자생시켰고,그 부담을 지금껏 안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실수가 있었음은,그 때 문안을 절충했던 실무책임자가 공개석상에서 시인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도 20년전의 「덮어놓고」를 생각한다. 그 어감을 연장하여,요즘 남·북관계의 느낌을 적는다면,다음 같은 짧은 글짓기가 가능하다. 『덮어놓고 통일을 하자면 통일이 되는가』 『덮어놓고 김일성을 만나서 어쩌자는 것인가』 『덮어놓고 북한으로만 가면,돈벌이가 되고 통일에 도움될까』

이렇게 의문투성이 짧은 글짓기 밖에 못하는 까닭은,정상회담에 관한 북으로부터의 「모호한 신호」 못지않게,우리정부 발신의 모호성에도 있다. 도대체 정부는 언제,어디에서,어떤 의제이든 최고책임자끼리 논의할 것을 제의한 것외에는 구체적인 설명을 한 적이 없다. 말투는 씩씩하지만 「덮어놓고」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모호한 신호」에는 의당 쿠바위기 때와 같은 발신자의 위험부담이 따른다. 정상회담이란 중대사를 오로지 김일성의 처분에 맡긴 것 같은 지금의 남·북 형세가 그 나타남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우리 국내정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할 카드를 취고있다. 그래서 나라안에는 정부가 한갓 수단인 정상회담을 목적으로 착각하여 정상회담을 구걸하듯 너무 서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정상회담의 상징조작으로 국내정국에 무엇을 꾸미려 한다는 정계일각의 의혹이 일고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정부와 정부정책에 대한 정당성과 신뢰성마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지금이라도 남·북관계가 어떤 단계에 와 있으므로 어떤 절차와 형식에 따라 남·북정상이 만나야 하는가와,그 자리에서는 무엇을 논의하고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는지 대국민 설명을 서둘러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하여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추진한다는 헌법(제4조)의 의무를 다하는 길이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북교섭에서 국민적 뒷받침이란 고지를 차지하고,김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을 차단할 수가 있다. 그의 오판을 막을수도 있다.

흔히들 남·북 정상회담의 여건이 바야흐로 무르익어 간다고 한다. 그런 대세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호한 신호」의 위험역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정부로서 떳떳하게 설명하고 신뢰를 회복할 때라야 그런 위험이 사라진다.

우리 대통령의 장기인듯도 한 「모호한 신호」가 국내정치에는 효능이 있는지 몰라도,통일정책에는 그런 처방이 통하지 않는다. 헌법 제4조의 의무는 대통령의 통치권으로써도 뛰어넘을 수 없는 민주·평화통일의 대원칙이다. 통일정책에 관한한 비밀교섭의 이점보다는 국민적 합의의 무게가 더 크다.

아무리 남·북 정상회담의 모든 여건이 무르익었다 해도,국민들이 채 납득을 못하고,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동안,그 여건이 다 익었다고는 결코 못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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