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상오 빈소재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실에서 열린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식은 IAEA사무총장과 북한원자력공업부 부부장의 성명낭독까지 포함,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지난 1년 가까이 이 협정서명과 사찰수용 문제를 놓고 한반도에 전쟁위기마저 조성되는 듯한 국제적 논란이 빚어졌던 것을 상기하면 허망한 느낌마저 들었다. 50여명의 취재진이 사무총장실을 메웠지만 그동안 논란과정을 가장 예민하게 추적해온 한국특파원들은 오히려 일본·미국기자들의 뒷전에 머물렀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력 동원에 진력했던 우리측 관계자들에게서도 『과연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회의가 느껴졌다. 북한이 주한미 핵무기철수 등 그들로서는 값진 반대급부를 얻은 것을 내세워 「결실」을 외치고 있는 것을 감안,「획기적 진전」이란 평가를 삼간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실제 북한측의 「승리감」은 단순한 허세로만 볼 수는 없다. 당초 수세에 처해 쫓기는 듯한 언행을 보였던 북한 대표단들은 갈수록 느긋한 자세로 바뀌었다. 지난해말 주한미 핵철수 공표와 한반도비핵화 합의 등에 즈음해서는 빈주재 대사관이 한국기자들을 기자회견에 초청하는 유례없는 유연한 홍보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퉁명스레 한국기자들을 대하던 이들이 최근에는 전화취재에도 흔쾌히 응하고 있다.
북한측의 이같은 변화는 물론 바람직한 것이다. 핵안전협정 서명의 의의가 큰 것도 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왜 이 상황에서 우리측이 결실감 대신 공허한 목표를 쫓아온 듯한 느낌을 갖느냐다.
남북한 관계의 획기적 진전이 그토록 요란스러웠던 핵문제와 안전협정 서명의 의미를 퇴색시킨 탓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협정서명에도 불구,핵논란의 시원한 타결과는 거리가 먼 불안정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회의는 우리가 얻은 구체적 소득은 없이 비핵화선언으로 장래의 핵선택여지만을 지레 포기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북한핵개발 의혹 자체가 북한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핵선택」을 지워버린 셈이 아닌가라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북한외교부조약 국장의 유난히 기고만장한 듯한 태도와 우리측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지켜보면서 혼란스러움을 주체하기 어려웠다.<빈에서>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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