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경 이재형형의 서거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하였습니다. 어제 저녁 채문식형으로부터 운경형이 심장병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급보를 전해듣고 바로 달려갔으나,중환자실에서 면회를 못한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행여나 하였는데 결국은 놀라운 부음이 나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운경형은 1914년 조국이 일제에 짓밟힌 이 땅에 태어나서 실로 파란만장한 민족사의 복판에 서서 20세기의 산증인으로 일생을 바쳐온 역사의 원로중 한분입니다. 이승만박사와 이범석장군의 총애를 받아 일찍이 30대 초반에 제헌의원과 상공부장관의 중책을 완수하며 해방 조국건설의 역군이 되었고 40∼50대의 장년시절에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가시덤불의 야당투사로 활약하였습니다. 60대 후반부터는 민정당 대표위원과 국회의장직을 역임하면서 장기집권과 군사통치의 악순환을 청산하는 과도적 민주화의 틀을 완성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노년기의 원숙성을 보였으니,개인으로의 출세와 국가건설에 공헌함은 여한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사적으로는 전주이씨 명문의 종친회장을 맡으시고 전래의 부와 치산에도 밝아 남달리 재계에도 이름을 날리었으니 세속적인 부귀에 있어서도 복이 많으셨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안쓰러운 여러가지 일들이 회상되면서 운경형의 태산같은 모습이 못내 그립습니다.
민정당 대표위원과 국회의장 시절 운경형은 주도세력이 전횡을 하려할 때마다 민정당이 카카색의 병영화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혹독한 비판을 서슴없이 하셨고 국쇠가 대화와 다수결의 정도에서 무너져 내릴 때 형은 사회봉을 잡지 않음으로써 여야 모두에게 경고를 주는데 서슴지 않았습니다.
운경형! 지난날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면서 이제 유명을 달리하시니 인생무상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생전에 의견과 노선을 달리하였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래소 사심없이 큰 업적을 남기신 형이 못내 그립습니다. 운경형! 20세기의 풍운을 싣고떠나신 운경형! 이제 타골이 읊은 것처럼 이 겨레의 등불이 동방과 세계를 밝힐 새 아침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틀거림 속에도 민주의 대도는 정착되어가고 이 기틀속에서 남북화해와 협력의 길과 그리고 통일의 전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왔다 가는 것은 하늘의 길이기에 막을 방도가 없고,살아서 자기의 몫을 다하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여명의 새 역사창조기에 형의 그 의연한 모습과 지도력의 아쉬움이 새삼 그립습니다. 형은 역사의 장에 길이남아 조국을 살피실 것입니다. 삼가 명목하소서.<윤길중 민자의원·전 민정당 대표위원>윤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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