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에 다시 핀 “웃음꽃”/탈출 석달만에 백방간청 재입국만나/엄마와 함께 남았던 2살막내도 건강/맞벌이하며 “평화” 되찾아걸프전때문에 생이별해야 했던 한국인 남편과 이라크 아내는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되찾았다. 내일이 없는 전쟁터에 아내 모나케일리씨(36)와 젖먹이 막내 진우군(2)을 남겨둔채 두 아들만 데리고 탈출했던 박휴중씨(37·현대건설 바그다드 지점직원·한국일보 91년 2월22일자 23면 보도)의 집에는 역경을 통해 더욱 강해진 사랑이 넘친다.
헤어진지 3개월만인 지난해 5월 기적처럼 다시 모인 박씨일가는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어느 누구보다도 갈망하고 있다.
박씨 가족은 다국적군의 공습이 이라크를 난타하던 지난해 2월9일 이란·이라크 국경에서 생이별을 했다. 모나씨는 이라크정부의 전시국민동원령에 발이 묶였고 진우는 자지러지게 울며 한사코 엄마품을 파고들어 이라크에 남게 됐다.
박씨는 민우(8) 신우(6)만 데리고 김포공항에 도착한뒤 밤잠을 못이루며 가족 걱정을 해야했다.
헤어진 날로부터 꼭 3월이 흐른 지난해 5월9일 이들 가족은 전쟁의 상처가 깊게 파인 바그다드에서 재회했다. 하루를 1년같이 보내던 박씨가 백방으로 간청,바늘구멍같은 이라크 재입국의 길을 뚫은 것이다.
남편과 두 아들을 떠나보낸 모나씨는 바그다드에서 동북쪽으로 70㎞ 떨어진 바쿠바농장에 피신처를 마련했다. 진우의 우유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밤길을 다듬어 살벌한 바그다드 시내로 잠입하기도 여러차례,때로는 검문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
모나씨는 현대건설 바그다드 지점에 비축된 휘발유 덕분에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여행을 감행할 수 있었으나 전기와 수도가 끊긴 시골농장에서 젖먹이와 단둘이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웠던 모나씨는 남편이 돌아오기 3일전 바그다드 시내의 여동생집으로 옮겼다.
코란을 읽고 있던 여동생은 『3일안에 틀림없이 형부가 돌아온다』고 예언했다.
여동생집에 온지 이틀째 되던날밤 진우가 유난히 칭얼거렸다. 우유를 먹이고 달래도 『아빠 아빠』를 옹알거리며 잠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쳐서 먼저 설핏 잠든 모나씨가 문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 시각은 정확히 다음날 새벽 2시. 남편과 두아들이 꿈처럼 들이 닥쳤고 가족은 한데 뒤엉켜 얼싸안고 울었다.
전쟁전부터 현대건설 바그다드지점에 특별사원으로 근무했던 모나씨는 다시 회사를 나가게 됐다. 박씨 부부는 전쟁의 후유증을 깊이 앓고있는 이라크에서 아마도 가장 바쁘고 행복한 맞벌이 부부일 것이다.
8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이라크정부,회교법정,가족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박씨와 결혼허가를 받아냈을 만큼 당찼던 모나씨는 3개월간의 고초가 너무도 힘겨웠던지 『그사이 10년은 늙었다』고 말한다. 박씨는 그런 아내에 귀중한 선물을 했다.
독실한 회교도인 아내를 위해 밥보다 더 좋아하던 술을 끊은 것이다.
엄마와 전쟁터에 남아있었던 진우는 걸프전후 수많은 이라크 유아들이 우유와 의약품부족으로 가엾게 희생된 것과 달리 젓살이 뽀얗게 올라 토실토실한 우량아다. 오히려 엄마와 떨어져있는 동안 통하지않는 국제전화번호를 하염없이 돌리며 애태우던 민우 신우가 좀처럼 살이 붙지않아 모나씨를 가슴아프게 하고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해 때로 엄마 아빠의 통역노릇까지 해주는 장남 신우는 국립 바그다드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엄마를 닮아 학교성적이 빼어나다. 와란스쿨 2학년인 진우는 전교 1등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바그다드=김현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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