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이제라도 자수해 넋 위로를”/형·동생은 극도의 공포 시달려/최근 비디오활용 수사 등에 기대29일로 벌써 1년을 맞은 이형호군(당시 9세·서울 구정국교 3) 유괴살해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아버지 이우실씨(36·성광피혁 대표)의 삶 전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깊어만 간다.
28일 하오 아들의 위패를 봉안한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각사를 찾은 이씨는 연신 아들의 위패와 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가누지 못했다. 유괴당한지 44일만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아들을 부둥켜안고 『죽이고 싶도록 미운 범인』을 저주했던 이씨는 이제 하루빨리 범인이 자수해 형호의 넋을 위로해주고 새 삶을 찾길 바라고 있다.
유원지에 놀러가길 유난히 좋아했던 아들을 생각하며 장흥유원지에 화장한 형호의 재를 흘려보낸 이씨는 사진만 빼고 옷과 책 등 모든 유품을 태워버렸다. 옷을 모두 태워야 좋은 옷입고 극락에 간다는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처참하게 숨진 아들을 잊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더욱 또렷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유괴되기 직전 스키장에서 찍은 사진 한장을 품속에 넣고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죄책감과 원망스러움도 달랜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아들이 유괴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강북의 모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지금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형호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달려가다 돌아서는 이씨는 『그래도 압구정동에서 멀리 떨어져 사니 조금은 낫다』고 말한다.
이씨는 형호의 형(13)과 동생(7)이 형호가 죽은 뒤에는 집에서도 불꺼진 곳에는 들어기지 못할 만큼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메어진다. 막내는 맛있는 과자가 생기면 『우리형 주어야지』 하고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아버지와 함께 주 2∼3번 대각사에 갈 때마다 형의 영정앞에 내놓는다.
이씨는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유력한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친 것이 지금도 안타깝고 한스럽다. 사건발생 13일째인 지난해 2월11일 범인으로부터 광화문 교보문고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경찰과 함께 달려갔던 이씨는 돈을 넣어둔 쓰레기통에 침을 뱉는 척하며 살피던 20대 청년을 잠복중인 경찰에 알렸지만 경찰이 머뭇거리는 사이 달아나고 말았다. 만약 그 청년이 범인이라면 2월15일 전후 살해됐을 형호가 당시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이씨는 믿고 있다.
품속의 사진을 꺼내볼 때마다 『범인을 알고 있으면 꿈속에서라도 이야기 해달라』고 소리치는 이씨의 애달픈 바람과 달리 경찰은 단일유괴사건으로는 사상 최대규모인 9천7백84명을 동원하고도 미궁을 헤매고 있다.
그동안 뿌린 전단이 28만장,전국에 배포한 범인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가 2천개,용의자로 조사받은 사람이 4백20명,시민제보가 3백11건이나 됐지만 단서는 없었다. 경찰은 46차례의 전화육성,약속장소에 남긴 10장의 메모지,범인에게 계좌를 개설해준 은행직원과 은행부근에서 도장를 파준 인장업자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몽타주 등 충분한 수사자료를 갖추고 있으나 원점서 맴돌고 있다.
이씨는 경찰이 최근 1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현상금을 대폭 올리고 비디오 제작업체인 남부프로덕션(주)이 제작한 외화테이프 10만개에 범인음성과 몽타주가 실린 프로그램을 넣기도 하는 등 새로운 각오로 수사에 나선 것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이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휘청거리는 사업이 안정되면 『동심을 건강하게 키워줄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아들의 영정을 보며 약속하고 있다.<이태희기자>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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