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청계천 헌책방거리/궁핍한 시대 지적 갈증에 샘물(그때 그자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궁핍한 시대 지적 갈증에 샘물(그때 그자리)

입력
1992.01.28 00:00
0 0

◎고학생등에 「거리의 도서관」역/60년대초 본격형성… 한때 백70곳 성업도/생활수준 향상·대형서점 등장 사양길로60년대부터 70년대말까지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청계천 일대에 밀집해 있던 헌책방거리에 짙은 향수를 느낀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새것으로 장만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을 정도로 궁핍하던 때라 새학기가 되면 청계천 책방가에는 헌책을 짝맞추기하는 중고생들로 성시를 이뤘다. 교수·대학생들은 전문서적을 보물찾기하듯 사갔고 문인·샐러리맨·공무원·교사·군인 등 각계의 지식인들은 청계천에서 목마른 지성을 목축였다.

6·25전쟁 와중에 대학도서관·유명학자들의 서재 등에서 흘러나온 진귀한 고서와 전문서적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며 손때 절은 각종 콘사이스도 저렴한 값으로 살수있었다.

50년대말까지는 현재 동대문 종합시장 건물자리 주변에 20여개 헌책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청계천에 본격적인 헌책방거리가 형성된 것은 60년대초부터이다.

청계천이 부분 복개되고 청계천로를 따라 평화시장이 들어서자 1층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헌책방이 잇달아 개업,한때는 1백70여곳이나 됐다. 이때부터 헌책방가는 서울의 명소가 되어 학기초뿐 아니라 4계절 내내 거리의 도서관으로,지성인의 「오아시스」로 뿌리를 내렸다.

청계천5가에서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쪽 7가에 이르는 평화시장 1층앞 인도에는 매일 수천명의 「서지인파」가 몰려 2평 남짓한 책방마다에 꽉 들어찬 2만∼3만여권의 각종 책들을 찾았다.

연구와 논문작성에 꼭 필요한 고서와 옛날잡지를 못구하던 서지학자 대학교수 대학원생들에게는 이곳이 학술서적 사냥터였고 이따금 고서더미에 파묻혔던 희귀문서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하숙비가 떨어지고 용돈이 궁한 일부 대학생들은 눈을 딱감고 아끼던 책을 들고와 팔기도 했다. 대학교재 외국원서 복사본 전문서적 등은 새책의 3분의 1 값이나 절반값으로 살 수 있었으나 이름있는 잡지의 창간·종간호와 40∼50년대의 절판본은 부르는게 값이기도 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는 「전설」같은 옛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전쟁후 고물상과 엿장수의 책더미속에 희귀본이 묻혀오는가 하면 남북인사의 집에서 무더기로 나온 귀한 책들이 미군더블백으로 거래되던 시절도 있었다.

장서가들은 월급날 봉투를 몽땅 털어 사고싶은 책들을 한보따리 사들고 갔다. 매일같이 석양무렵에 나타나 「고서순례」를 하며 좋은 책을 발견하면 책방주인에게 막걸리대접을 하던 단골 서지학자들도 많았다.

회사원 조성관씨(45·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중학교시절 청계천 헌책방을 기웃거리며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하던 일이 엊그제 같다』며 『모범생이 쓰던 온전한 헌책이 걸리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청계천 헌책방가에 사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말. 생활수준이 고르게 향상되면서 시내 곳곳에 중·대형서점이 들어서고 복사기가 보급되는 등 세태가 변하면서 이곳의 경기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78년에 1백14개이던 헌책방은 지난해에만 7곳이 문을 닫아 지금은 55곳만이 남아있고 그나마 새책을 박리다매하는 경우가 많다.

68년부터 평양서점을 꾸려오고 있는 김융모씨(68)는 『70년대 중반 한창 장사가 잘 될때는 점심을 먹을수가 없어 가게입구에 줄을 쳐놓고 도시락을 먹는 날이 많았다』면서 『단골만을 상대로 영업을 계속할 수 없어 점포정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항서적의 2대주인인 이재천씨(40)는 『헌책을 구하기도 힘들고 찾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 79년부터 신간위주로 바꾸었다』며 『무엇보다 비디오 등 시각문화 영향으로 독서인구가 줄어들었으나 교수 문인 학자 등 단골들을 위해서라도 버틸 때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청계천에서 책내음이 없어질 날도 멀지 않은 것같다.<송용회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