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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 앞서/정달영(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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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 앞서/정달영(화요칼럼)

입력
1992.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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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자의 이성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희극이 되지만 한 동포의 감성의 눈으로 보면 기가막히는 비극이 된다고,양성철교수는 김일성주석과 북한의 현실을 말하는 글을 시작한 일이 있다. 그는 또 「웃기에는 너무나도 슬프고 울기에는 너무나도 우스운 이야기」라는,임은(「북조선창설주역이 쓴 김일성정전」의 가명저자)의 독백을 인용했다.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의 기초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양교수가 하고싶은 말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체사상이라는,있지도 않은 옷을 걸쳤다고 생각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김일성주석과 주체사상의 허구를 알기쉽게 드러냈었다. 이런 논평과 희화화는 기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김일성은 누구냐

바로 그 때문에 난문하나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과연,한달 남짓 뒤로 「성사」가 전해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그 역사적 장소와 시간에 노태우대통령의 상대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 김일성주석은 누구이며,민족에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는 물음 자체에 갈등이 숨어있어 대답이 쉽지않다. 그러나,분단과 동족상잔과 극한대결로 이어져온 민족사에서 그의 한쪽 몫이 무엇이었던가는 아직도 분명히 「아,어찌 잊으랴」이다.

전쟁과 살육과 이산의 원한은 많은 동포들의 핏줄마다에서 여전히 분노로 끓고 있으며,그가 이룩했다고 하는 「우리식대로 살기」의 자폐증세와,그곳 북녘땅을 덮고있는 3만5천개의 동상은 우리시대의 비극으로 인식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는 어느덧 「화해시대의 동반자」쯤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지만,그는 동시에 「청산될 수 없는 역사의 범죄자」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점이 심리적 갈등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어떤 역사에서든 갈등의 극복없이 역사의 발전은 오지 않는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지금 2차대전후의 분단국들중 마지막 남은 분단국이라는 세계적 오명을 지닌고 있다. 통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지만,통일을 위한 노력과 준비는 게을러서는 안될 민족의 소명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그런 뜻에서 「역사적」이고,그 어떤 정략과 갈등도 넘어설 수 있는 당당함을 지닌다.

○냉전사고의 극복

더 중요한 일은,회담의 시기가 총선의 전이냐 후냐,또는 누구의 생일에 맞출 것이냐가 아니라,회담을 맞이하는 남과 북의 자세이다. 그 첫번째이자 마지막이 냉전형 사고로부터의 진정한 탈출이다.

정치판에서든 남북관계에서든,우리는 「우리쪽이 이겨야만 우리가 산다」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믿어왔다.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지면 끝장이다라는 제로 섬 게임의 냉전형 사고가 우리를 지배해왔다. 좌 아니면 우,극좌 아니면 극우이지 「중간」은 용서되지 않는다. 더구나 「지고도 이기는」 논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냉전이 남긴 우리 민족사의 최대 비극은 해방정국에서의 「중간파의 몰락」이었다는 지적이있다.

특히 통일을 말할 때,마지막 한순간까지 분단을 모면하기 위해 목숨걸고 나섰던 「중간파」의 노력은 반드시 기억되고 교훈이 되어야 한다.

통일논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화 논의에서도 「모 아니면 도」식,또는 「이기지 못하면 죽기」식 흑백사고의 추방과 불식은 아주 시급하고 중요하다. 해방후 좌우합작,또는 남북협상에 나섰던 「중간파」들이 극단적인 좌·우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몰락한 이래 우리사회가 바로 오늘 「편가르기식」으로 진행되는 밀실공천작업에 이르기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제로섬 게임은 과연 「또하나의 민족적 비극」으로 일컫기에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지고도 이기는 길

통일문제에서 남북한이 동서독이 못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남쪽이 독일의 서쪽이 못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수준에도 있음은 다 아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뜻에서 「중간화」이다. 중간을 가는 것이다. 이제는 몇 남지도 않았지만,지구상의 어떤 지독한 공산주의국가도 국명에는 민주주의를 표시하고 있다. 북한도 같다. 민주화의 수준이 문제일뿐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다짐할 일은 좌·우의 극단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어야 할는지 모른다. 이기지 못하면 끝장난다는 「악몽」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라면 김일성이라는 이름의 갈등을 벗어날 수 있어야만 하듯이,우리는 우리 사회에 큰 곪집이 되어 썩고있는 제로섬 게임의 냉전형 사고부터 척결해야 한다.

다행한 일은 시대의 흐름이다. 시간은 우리 민족의 편에 있고,무엇보다도 북한사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에 왔다.

김일성주석도 어쩔수 없이 천수의 한계에 섰다. 민주화의 수준높임이 「지고도 이기는」 첩경이다.<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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