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덕이는 경제불황에 실업률 급증/농산물 산지구입등 「알뜰안내책」 불티/주부 절약운동도 확산… 패션가 찬서리【워싱턴=정일화특파원】 미국인의 생활이 청교도적 검소함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구두쇠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년들어 실업률이 7.1%를 넘어서고 있는데다가 경제도 계속 불황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불안심리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가,전문직 그리고 재산가들 조차도 이런 불안심리에 힘입어 『쓰는 즐거움에서 아끼는 즐거움』으로 생활패턴을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뉴욕 타임스지는 『최근들어 잘되는 사업은 어떻게 아낄 것인가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사업뿐』이라고 까지 쓰고있다.
미국전역에도 타이트왜드 개지트(미네소타주)와 리빙 칩 뉴스(캘리포니아주) 같은 소규모 절약뉴스지들이 발행돼 집을 어떻게 하면 좀더 싸게 살 수 있는가,주택의 관리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가,또는 어느 아우트레트(유행지난 옷·그릇들을 파는곳)에 무슨 상품이 들어와 있는가,농산물을 산지에서 직접 사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등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불황속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월간 타이트왜드 개지트는 2년전에 창간됐는데 최근들어 부수가 갑자기 늘어 50만부에 이르렀다. 리빙 칩 뉴스지도 이에 버금가는 부수를 발행하고 있다. 리빙 칩 뉴스의 발행인 랠리 로드는 리빙 칩(싸게 살아가는 법)이라는 책까지 내 일약 갑부가 됐다.
캘리포니아주 라모나시에 사는 내니트 윌리엄스는 이웃 부인들끼리 「구두쇠 어머니」라는 어머니회를 만들어 절약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모체가 돼 현재 「구두쇠 어머니」 모임의 지부를 미 전역에 걸쳐 확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런 절약풍조속에서 가장 고통을 당하는 부문은 패션이다.
유명상표가 맥을 추지 못한다. 워싱턴에도 메이시,삭스 피프스 같은 최고급 상표만 취급하는 유명백화점들이 이곳 저곳에 있는데 이런 백화점들이 최근들어 매우 썰렁한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대신 서민백화점으로 알려지고 있는 K마트,시어스,울워드 앤드 로스롭 같은 곳이 오히려 호황이다.
고급백화점만 드나들던 부유층들이 K마트 같은 서민백화점을 드나들면서 『돈 아끼는 재미도 돈 쓰는 재미에 못지않게 근사하다』고 말한다.
소위 스테이터스 심벌이라는 개념이 자연적으로 희박해져 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수입에 따라 집,자동차,의복은 물론 이용하는 식당,드나드는 클럽 등에 격차를 갖고 이용하곤 하는것이 자본주의의 정도처럼 여겨져와 수입정도가 높으면 으레 큰집,외제차,유명브랜드 의복을 입어 왔는데 이런 풍토가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보이던 리무진 같은 것은 지금은 거의 골동품처럼 여겨지고 있다. 가끔 아랍부호들이 고급호텔을 쓰면서 캐딜락 리무진을 빌려 타고 다니는 모습이 보이나 미국인들은 그런 모습을 존중하기는 커녕 요즘은 「이상한 짓」이라고 여긴다.
여피(yuppie)족이라는 말은 이제 영 찾아 볼 수 없다. 돈많고 사회적 신분도 꽤높아 그저 돈쓰는 재미를 삶의 중심으로 삼는 그런 인물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미국인들의 이런 검약생활로의 복귀는 20세기의 물질적 풍요가 결국 마약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같은 인간파괴 행위를 가져온데 대한 반성의 일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경기불황은 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심리적 요소가 더 강한것이 특징이다.
현재의 불황은 지난 81∼82년의 불황에 비해 볼때 경제적 수치는 훨씬 낮은 것인데도 피부로 느끼는 불안감은 훨씬 크다.
82년의 경우 81년에 비해 국민총생산(GNP)이 3조2천억에서 3조1천억달러로 줄어 3.4%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91년은 90년에 비해 4조1천7백억에서 4조1천4백억으로 줄어 불과 0.6%만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82년에 비해 훨씬 크다.
만일 청교도적 검약정신이 미 전역으로 확산돼 『얼마든지 절약하며 살수있다』는 국민심리만 형성된다면 미국의 경제불황 극복은 시간문제라고도 볼수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