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허가서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6억원이라고 하면 조금 터무니 없는 가격일까. 돈 있는 사람이야 싸다고 할지 모르지만 서민들에게는 천문학적인 숫자임에 틀림없다.최근 일본에서 교과서 등을 발행하는 한 출판사가 고등학생 1천2백명을 대상으로 고등학생들의 금전감각을 알아 보기위해 여러 항목을 제시하고 그 가격을 매겨보도록 하는 재미있는 조사를 했다. 가장 비싼 가격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대학입학허가서로 1억엔(6억원)이었다. 일본 대학입시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가격인데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이었다. 그 가격 역시 1억엔이었다. 조사에 응한 고등학생들의 22%가 두 항목에 똑같은 가격을 붙였다. 고등학생들의 장난끼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이를 통해 대학입시의 어려움과 이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는 일본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한눈에 떠올려 볼 수 있다. 교칙가격은 0엔(54%)이었다.
역시 대학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보는 대학입학허가서의 가격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일본 학생들과 똑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가격을 매길 것이 틀림없다. 지난해 예능계시험 부정에 1억원 이상의 돈이 오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여입학제도가 현실화되면 10억원도 마다하지 않을 학부형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요즘의 우리 현실이다. 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이것도 싸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후기대 입학시험지 도난사건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전형적인 사건이다. 현재 범행전모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학입학허가서가 이처럼 값어치 있는 우리네 대학입시에 부동산투기처럼 한탕주의가 틈을 비비고 들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려 광종때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과거제도에도 끊임없이 부정문제가 제기됐다. 과거급제는 그 값어치가 지금의 대학입시 합격정도가 아니었다. 벼슬길에 오르려면 이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급제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글 잘하는 선비를 매수해 함께 과거장에 들어가 시험지를 슬쩍 바꿔치거나 시험제목을 빼돌린 후 밖에서 글을 지어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는 방법,밀봉한 응시자의 이름 및 시험지를 매수된 시험관이 알아내 합격자 사이에 끼워넣는 등 갖은 부정수단이 다 동원됐다.
과거제도가 처음 시작된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나라에서 싹이터 수·당을 거쳐 자리잡은 중국의 과거도 부정이 그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응시자들의 신체검사까지 했겠는가. 속옷에 사서오경 등을 적어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과거의 부정은 정치가 불안하고 권력이 질서를 잃었을 때 극에 달했다. 조선조 후기때는 과거장이 부정부패로 난장판이 돼 과거망국론이 일기도 했다. 구한말에 순국한 매천 황현이 장원을 부당하게 빼앗긴 후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일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하필 이때에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이런 사건이 터졌는가를 되씹어야 한다. 이번 도난사건으로 수험생과 정부·대학 등이 입은 수백억원의 피해만 떠올려 『역시 대학입학허가서가 비싸기는 하다』고 한탄만 할 일도 아니다. 레임덕(Lame Duck) 현상까지는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선거 등 정치에 흘려 사회질서의 나사가 풀어지는 일이 없도록 살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부터 스스로의 나사를 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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