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숫자들이 신문에 실린다. 그 큰 숫자들을 보고 한편 놀라면서,다른 한편으로는 그 숫자들의 실속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예컨대,작년 11월 정부가 시작한 「30분 일 더하기」 운동은 불과 보름사이 연인원 3억4천9백25만3천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8배가 넘는다. 취업인구(1천9백52만명)만을 놓고 생각하면,취업자 한사람이 평균 15차례,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취업자 모두가 보름내내 운동에 참여했다는 애기가 된다. 겉보기에는 운동의 열기가 그만큼 높았고,참여가 그만큼 광범위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의 실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연초부터 들려 오는 노사관계,봄철 임금교섭의 우울한 전망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안됐지만,대답은 관주도의 운동이란 결국 전시용·일과성 바람으로 그치고 만다는 평범한 상식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30분 일 더하기」와 거의 같은 무렵,농협은 쌀시장 개방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당초 1백만명을 목표로 했던이 운동은 불과 40일만에 1천2백92만8천명의 서명을 모았다. 전체인구의 30%,성인인구의 절반,전국모든 가구(1천1백35만가구)마다 적어도 한 사람이 운동에 호응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시 미대통령이 방한중 내내 쌀시장 개방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무게 4.5톤에 이른 그 서명록의 효과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말을 안했다고 해서 쌀시장 개방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조만간 쌀을 포함한 모든 농산물시장이 개방될 날은 오고야 만다. 그럴 경우 1천2백92만8천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쉽게 계산해서,서명에 참여했던 1천만명이 한달에 1천원씩,한해 1만2천원의 외국농산물 소비를 자제한다고 하면,그 효과는 1천2백억원의 농산물 수입감소,1천2백억원의 농촌 소득증가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효과가 농산물시장을 개방하고도 우리 농업을 지키는 한 방도 일 것이다.
하지만 그 1천2백92만8천명이 서명운동 이후 그런 구실까지 해주고 있는 낌새는 별로 없다. 일본에서 횟감을 근 1백억원어치나 들여 오고,양담배의 시장점유율이 착실하게 늘어나 작년 한해 2천37억원어치가 팔렸다는 농산물 수입동향이,그들의 서명참여와 소비행동이 별개임을 말해준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본다면,조직되지 않은 1천2백92만8천명은 그 수에 걸맞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으며,행동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 운동은 실속이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숫자가 크기로 하자면,작금의 공명선거운동도 만만치가 않다. 작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공명선거실천국민운동협의회」(공선협)는 현재 근 60개 단체를 결집하고 있으며,엊그제 발족한 「공명선거실현 민간단체연합」(공민련)은 4백30여개 단체를 망라할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조직이 둘이나 생겨 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두 조직에 가입한 단체들중에는 공칭 수십,수백만의 회원을 자랑하는 단체가 여럿이라,두 조직에 망라됐다고 할 수 있는 시민은 1천만명을 좋이 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실제 공명선거운동에 참여한다고해야 할지가 미심하다는 뜻에서,공명선거운동의 실속은 표방하는 숫자의 크기만 못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의 경험으로 말해도 선거기간중의 공명선거운동은 오히려 운동의 한계성을 드러낸 일면이 없지 않다. 신문지상의 운동은 활발했던 반면,공선협이 동원가능했던 자금이 1천만원 미만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공선협은 새해들어 조직을 확대하고,9억원의 모금사업을 기획하고 있다지만,그 성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두고 볼 수 밖에 없다. 관변조직의 딱지가 붙은 공민련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컨대 명망가나 활동가만의 운동은 목소리에 비하여 실속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불특정다수로 남아 있는 시민을 어떻게 동원하고 참여시키느냐,어떻게 그들을 조직하고 해동하게 하느냐가 그런 한계를 뛰어 넘는 유일한 방도가 된다.
시민운동이나 참여라는 관점에서도 이번 봄의 14대 총선은 우리 정치사의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한편의 공명선거운동도 그러려니와,이번 총선부터 모든 선거운동원을 자원봉사자로 충원키로 한 점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계산에 의하면 선거사무장을 비롯한 선거운동원이 전국을 통틀어 37만2천8백명이나 된다. 역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는데,지난 광역선거에서 선거운동원의 하루 일당이 10만원까지 오르고 그 때문에 제조업과 농촌의 일손이 말랐던 것을 생각하면,이들 모두를 자원봉사자로 채운다는 것은 참으로 획기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많은 자원봉사자를 구할 수가 있겠느냐는데 있다. 자치하면 「뒷 돈」 일당이 성행하여,수십만명의 선거법 위반자나 양산하고,모처럼 새로운 자원봉사제도의 취지를 짓밟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여기에는 분명 넘기 어려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다. 자원봉사의 기풍이 크게 일지 않고는 이번 총선의 공명성을 보장할 수 없음도 역시 분명하다. 그런만큼 공명선거의 감시자로 자원봉사하는 일이 값진것은 물론 이지만,공명선거의 참여자로 자원봉사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념을 같이하는 정치인을 도울 수도 있고,바람직하지 못한 정치꾼의 진출을 견제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의 현장학습으로도 다시 없는 기회가 된다. 뜻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함은 물론,선관위와 정부,정당,직장,학교 등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정책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14대 총선의 공명여부를 걱정하기 보다는,자원봉사에 의한 선거참여와 선거감시를 통하여,올 1992년을 우리 정치사의 자원봉사 원년으로 자량스럽게 기록할 수 있었으면 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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