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크로아티아등 독재 회귀국면/자유선거도 「폭력」엔 허약/준법전통등 중요성 부각부시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주의의 장정」이 최근 제길에서 이탈하고 있다.
그루지야에서는 자유경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독재자로 낙인찍혀 축출된 뒤 다시 들어와 내전을 선포했고 알제리에서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민주선거에 의한 한 정당의 집권을 봉쇄했으며 크로아티아에서는 민주방법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나치치하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유대인 자신탓으로 돌리며 유대나치즘의 출현을 경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베이커 국무장관은 동구권과 남미 각국에서의 독재정권 붕괴를 환영하면서 자유선거와 시장경제 개혁을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인정과 원조를 받기위해 통과해야할 시험으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경선으로 독재자가 권력을 잡게되고 동구권 정당이 파벌로 갈라지며 신생 민주국가에서 군부와 관료집단이 상존하고 있음을 볼때 참민주주의는 자유선거와 자유경제 이상의 무엇을 필요로 하며 민주화 과정이 뒤집혀질수 없다는 부시의 주장이 위험한 자만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민주주의 수출」의 저자인 조슈아 무라브칙은 선거는 민주주의에 있어 주요사안일뿐 유일사안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부시 대통령의 상상력과 지도력에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 국가의 선거감시에 상당한 예산을 쓰고있는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칼 거시맨회장도 선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데 동의한다. 선거에 모든 것을 걸어놓으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며 그루지야와 크로아티아 사태에서 보듯 패자를 보호해주지 않는 선거는 공염불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마다 세계각국의 자유정도를 조사 발표하고 있는 프리덤 하우스의 브루스 매콤소장은 『금년들어 세계의 과반수 국가가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를 갖게 됐다』고 밝힌다.
그러나 매콤 소장은 인권탄압에 연루된 민주주의 국가도 점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국가의 절반 이상에서 아직도 보안세력이 국내정치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신생 민주국가의 경우 정치지도자들의 힘이 너무 약해 구제도권의 국가권력기관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칠레에서는 민주정부가 회복된 1980년 이후 6천여명의 민간인이 군대에 피살됐으며 동구권 제국과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공산관료들이 경찰,사법,교육 및 일부 경제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무라브칙은 『민초들이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물리력을 가진 집단이 등장할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구권과 남미 및 중동지역의 많은 국가에서 이들 특권 집단이 자신의 이익수호를 위해 정권에 연연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예를 들어 알제리의 군장교들은 호화상품을 할인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전용 슈퍼마켓을 갖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두번째 민주화 시험인 급격한 경제개혁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 선거에서는 1백20개 정당이 등록해 의석수에서 10위를 차지한 「맥주 애호당」 등 모두 29개 정당이 의회에 진출했다. 투표율은 42%에 불과했다. 사분오열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의 원조조건에 따라 긴축정책을 추진하려다 거센 파업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실업률은 11.4%로 치솟은 반면 산업생산율은 14%나 떨어졌다. 프리덤 하우스가 폴란드,헝가리 및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들 국민의 20∼25%(주로 노동자·농민 및 노인인구)가 경제개혁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많을뿐 아니라 전제주의 체제로의 회귀에 동조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수잔 우드워드연구원은 2차대전후의 이탈리아와 프랑코 총통 사후의 스페인이 민주화를 추진하는 동안 서방국가들은 충분한 기간을 두고 기다렸다고 지적한다. 우드워드연구원은 동구제국과 구소련의 공산경제 체제에 충격요법을 적용하려 들다가는 오히려 반민주주의,초민족주의 및 인종차별 감정만 부추기게 될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국가의 민주화를 돕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정치학자들이 오랜 기간 토론해왔다. 그중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은 법률 존중과 비정부 독립기관의 활동 등 「민간 문화」의 존재 여부다. 칠레국민이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장군을 탄핵으로 쫓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것은 다름아닌 국민의 투철한 준법전통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칠레국민 자신들도 군사 쿠데타에 동원된 탱크가 교통신호등 때문에 멈추는 나라는 칠레밖에 없다고 농담할 정도이다.
이같은 사실은 동구제국과 러시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뇌물수수,파벌주의,부패,허위사실 유포 등이 수십년동안 관행으로 돼온 국가에서는 국민이 자유선거로 이룩될 정부의 보호막인 법률·언론·사법 등 모든 공공제도를 불신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하튼 자유선거로 선출된 폭군일지라도 냉소적일 망정 민주주의를 읊조려야만 한다는 사실은 아직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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