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후보를 경선으로 뽑겠다고 한 대통령의 연초발언은 사실 큰 뉴스였다. 체육관 대통령 후보밖에 모르는 이 나라에서 그건 대단한 정치발전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가치에 걸맞는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후계가시화에 관한 대통령의 수사가 너무 계산된듯해 오히려 전체의 초점이 흐려진것 같았고,김영삼대표가 후보자냐 아니냐 여부가 관심사였기에 여타문제는 주의를 끌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런데,그 경선론이라는 것이 생각해보면 영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경선은 결과에 대해 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게임이다. 이긴 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수용하며 진 자는 승자를 축하하고 따라가줄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결판이 난뒤에는 언제 다투었으냐 싶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원칙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민자당에선 이 「공존의 논리」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권력을 잡지 못하면 죽는다』는 이판사판식의 극한 대결의식이 다시 잠복돼 표면만 소강상태일 뿐이고,공생공사를 말하는 중용의 소리는 아예 꽁꽁 숨어버렸다. YS가 후보가 되면 다른 계파가 딴살림을 차려 나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반YS계가 성공하면 민주계가 탈당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경선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당이 공중분해될 것 같은 극단론이 깔려있는 것이 민자당 경선론의 배경이라 할수 있다. 더 심하게 말해 총선때 민자당후보를 찍는 유권자들은 두어달 뒤 깨질 운명의 정당을 결과적으로 지지한 셈이 된다는 맹랑한 가설이 서는 셈이다.
○내분에 정치력 소진
정치는 세 싸움이고 세는 바로 수에 의해 결정된다. 소수파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김영삼대표가 대통령에게 경선을 먼저 주장했다고 한다면 이유와 속셈은 어떻든 간에 그 결의가 돋보인다. 그런점에서 김 대표의 기자회견은 기다려졌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말한 경선원칙에서 더이상 분명하게 보태어 말한게 없다. 후보가시화에 관해 『당의 총재가 대표최고위원을 심정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만 말했다. 그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경선 형식은 취하되 대통령이 내부적으로 교통정리를 한다는 밀약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민자당의 얼굴은 이 김영삼이다. 내 책임하에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라고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보아서는 대세론에 의해서 경선에서의 승리를 다짐해두고 싶은듯한 눈치가 역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어야 할점은 한손에 경선을,또 다른손에 「후보가시화」 요구를 잡는 양면작전을 계속 펴고 있을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보가시화에 관한 더이상의 논란은 자칫 국민을 우롱하는 말장난처럼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와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 것이다.
3당 합당때는 공존의 법칙이 있었다. 내각제 추진을 합의해놨기 때문에 권력균배를 전제로 할때 동거(Cohabitation)의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각제가 무산됐을때 민자당엔 갑자기 원칙이 없어졌다. 전통야당출신의 김 대표가 직선제대통령을 노리는 것이 어떤 정치적 손익을 가져올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비토그룹이 형성되기에 이르른 것이고,통칭 YS와 반YS로 나뉘어 서로 상대의 발목잡기에 영일이 없었다. 가십정치와 몸싸움 정치로 스스로를 왜소화 시키고 천박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소모전,신경전에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당의 내분과 갈등이 후반기 누수를 가속화시킬 것을 우려한듯한 청와대측의 안개정치로 정국은 3∼4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불명 상태로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나라에 줄 영향은 따져볼 것도 없다. 정치에 한해 말해본다해도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갈등을 안고 전력투구의 개혁을 추진하기 힘들 것이고,격심한 내분속에서 정치의 장기포석을 유장하게 구상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총선을 앞두고 민자당 후보들이 서울 등 대도시에서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이나 기성정치인들을 우습게 보거나 깔보고 마구 신당 돌풍이 일고있는 것은 지난 2년간 보인 민자당의 실착이 몰고온 자업자득인 것이다.
○대국적 관리에 소홀
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민자당의 얼굴」이라 했다. 미래에 그렇게 되리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지난 2년간의 실패를 뼈저리게 반성하는데도 「얼굴」이어야 한다. 김 대표는 대세론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대국관리에 소홀했다. 민자당 후계체제에서 가장 지지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도자라는 자만심 때문인지,혹은 끊임없이 나무위에서 끌어내리려거나 흔드는 사람들을 의식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국민을 상대로 하는 큰 정치를 등한히 했다고 할수 있다. 정치지도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대통령에게 정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후계구도에 신경을 쓰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대통령의 충실한 집행자역을 해내는 것으로 만족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가 대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일찍이 개혁쪽에서 승부를 내려했다면 사정은 지금보다 낫게 돌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 대표는 선거는 축제처럼 치러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총선도 그렇지만 그의 운명이 걸린 경선도 축제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국민을 위한 정치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대권구도를 위해 쓰였던 가공할 정치적 파괴력이 나라가 처한 난관을 극복하는 돌파력이 될수있어야 한다. 국리민복을 위한 개혁의 추진력이 될수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것에 앞서 당내의 공존원칙부터 세우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본사 주필>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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