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애는 그래도 따뜻했다”/“만신창이 심신 이젠 완쾌”/사기·흉기강도 당해 「병원전시회」/외조카 상봉·주변 격려 호의 감격/미술계 친교계기도… “꼭 보답할터”고국화단에서 전시회를 열겠다는 부푼꿈을 안고 입국했다 모진수난을 당한 중국동포화가 구준서씨(47·길림성 연길시·본보 91년 11월27일자 23면 보도)가 19일 10개월여의 파란만장한 고국방문을 끝내고 귀로에 올랐다.
구씨는 이날 중국천지까지 3박4일의 긴 뱃길에 오르기전 인천부두에 배웅나온 모국친구들에게 『뜻하지 않게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치료해준 모국동포들의 따뜻한 정성에 뭐라고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구씨는 지난해 3월1일 필생의 역작 25점을 안고 귀국,두차례 전시회까지 열어 국내화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졸지에 빈털터리가 됐고 9월에는 설상가상으로 여인숙 숙소에서 강도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는 횡액을 당했다.
구씨는 믿고 찾아온 모국의 어지러운 현실에 절망했으나 곧 자신의 판단이 성급했음을 깨닫게 됐다.
구씨가 입원한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 직원들은 사기당한 그림회수에 발벗고 나서 지난해 11월26일 병원 1층 로비에서 회수한 그림 10점으로 전시회를 열어 3백만원을 마련해주었다.
이 사실이 본보에 보도되자 구씨를 도와 동포로서의 부끄러움을 씻겠다는 사랑의 손길이 줄을 이었다.
잇따른 격려전화와 방문,절대로 이름을 밝힐 수 없다며 성금만 놓고 가버린 재미교포,구랍 31일 퇴원할때 추울거라며 새로 산 점퍼를 선뜻 벗어주던 어떤 환자의 보호자 등이 구씨를 감격케했다. 병원측도 3개월여에 걸친 막대한 입원·치료비를 전액 무료로 해주었다.
무엇보다 한때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반명수씨(46·경기 화성군 동탄면 오산3리 450)는 구씨에게 잊을 수 없는 은인이 됐다. 반씨는 퇴원후 갈곳이 없던 구씨를 집으로 초대,떠날때까지 숙식을 제공했다.
구씨는 또 따로 모국에 와있다 본보기사를 보고 찾아온 외조카 방관순씨(35·길림성 연길시)를 뜻밖에 만났다. 방시가 취직해 있던 회사사장 민원식씨(64)도 수시로 구씨를 찾아 『모국은 절대 차갑지 않다』고 격려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브로커로부터 구씨의 1백50호짜리 대형 「천지」 그림을 사들인뒤 보도를 통해 구씨의 수난을 알게된 사람은 고심끝에 이를 구씨에게 돌려주었으며 「한국 소방공사 상록수회」 신군식회장(49)이 2백50만원에 다시 사들였다.
우여곡절 끝에 구씨가 그림값으로 회수한 돈은 모두 5백50만원. 밀린 숙식비 등 빚을 갚고 여비를 제한면 남는게 없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난 열달동안 모국에서의 경험이 평생 계속할 예술활동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영감과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다.
그동안 사귄 모국의 미술계 인사들도 큰 재산이다. 전시회를 보고 구씨의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한 한국문예작가협회(회장 김민수·56)는 구씨를 협회 연길시 지부장으로 정식위촉,18일 임명장을 주였다. 특히 이 협회 박영길이사(37·에덴화실 경영)와는 친형제와 같은 사이가 됐다.
출국을 앞두고 구씨는 환송회만 10번도 넘게 참석했다.
세브란스병원 주치의 등 고마운 동포들에게 정성을 표시하기 위해 틈틈이 서예작품을 만들어 선물했다.
부인 방정옥씨(44)에게 선물할 옷과 화장품을 사고 두딸을 위해서는 소형카셋과 만년필을 준비한 구씨는 사흘전 처음으로 중국의 집에 전화해 귀향소식을 알렸다.
겨울바람이 매서운 인천 부두에서 구씨는 『중국전역을 누비며 더 차원높은 그림을 그려 반드시 다시 돌아와 은혜를 갚겠다』고 거듭거듭 약속했다.<원일희기자>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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