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구에도 위안소 있었다”/당시 도청근무 70대 폭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구에도 위안소 있었다”/당시 도청근무 70대 폭로

입력
1992.01.19 00:00
0 0

◎동촌 비행장일대 주둔 일 전투비행대서 활용/20명 수용… 대부분 전라·제주 출신 17∼20세【대구=임재만·이상곤기자】 대구 동촌비행장 근처에도 일제의 종군위안소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일제말에 경북도청 근로동원과 원호계에 근무했다는 유모씨(73·대구 동구)는 18일 현재의 동촌파출소 동쪽지점인 대구 동구 검사동 984(당시 경북 달성군 동촌면 검사동) 일대에 있었던 50평규모 2층 목조건물이 종군위안소 였다고 증언했다.

유씨는 『이곳에 여자정신대원 20여명이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제주도와 전라도에서 끌려온 17∼20세 전후의 처녀들이었다』고 말했다.

유씨에 의하면 이 위안소는 1944년 10월 동촌비행장에 주둔하던 약 1천명 규모의 후쿠오카 제6연대 지대소속 전투비행대가 당시 철공소였던 이곳을 접수,2층을 개조,위안소로 활용했다는 것.

입구에는 일본헌병 2명이 경비를 서면서 일반인들은 기웃거리는 것도 엄격히 통제됐다.

위안부들은 평일에는 군트럭을 타고 군부대를 출입했다는 유씨는 『토·일요일이면 군인들이 위안소 앞에 긴줄로 늘어서 있었다』며 이들은 가로 10㎝ 세로 6㎝ 크기의 붉은 도장이 찍힌 군표를 사용 했다고 증언했다.

이 위안소는 해방과 함께 동촌지역 청년자위대에 의해 1945년 8월21일 폐쇄됐다. 유씨는 자신이 당시 자위대 단장을 맡아 정신대원들을 면담했으나 한결같이 『아무 것도 묻지 말아달라』며 애원하던 것이 귀에 쟁쟁 하다고 회상 했다.

당시 위안소 건물은 1948년 동네사람들이 기분나쁜 건물이라며 철거했고 현재의 건물은 5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