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버스요금이 또…(정경희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버스요금이 또…(정경희 칼럼)

입력
1992.01.18 00:00
0 0

말이건 가마건 무엇이든 「타고 가는 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아무개 대감 행차시다. 게 섰거라』는 외침과 함께 백성들은 길을 비켜야했다.외 바퀴가 달린 초헌은 종2품 이상이 탔고,높다랗게 의자가 앉혀진 남여는 승지나 6조의 참의 이상 벼슬아치들이 탔다. 네사람이 메는 사인교는 6조의 판서 이상,또는 귀부인들이 탔다. 그중에서도 평교자는 종1품 이상이 탔으니까,임금이 타는 연을 제외하고는 가장 지체가 높았다.

그래선지 「사람위에 사람없다」는 오늘날이지만,한국에서는 「사람위에 자동차가 있다」고 한다. 걷는 사람과 자동차가 맞닥뜨렸을 때 자동차가 양보하는 일은 거의 없는게 한국이다.

주택가의 건널목을 가다 보면 멀찌감치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자동차가 「빵빵」 요란하게 경적을 울린다. 『자동차가 가신다. 비켜라』는 명령이다. 한국에서만 볼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은 자가용 승용차 뿐만이 아니다. 전국 6대 도시의 횡단보도를 조사해 봤더니 「차랑통행위주」로 돼있더라는 조서결과가 있었다(한국소비자보호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람이 채 건너기도 전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것이다. 사람이야 건너건 말건 자동차부터 굴러가게 하자는 신호등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도시의 길이 꽉 막힌 소위 「교통체증」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승용차의 홍수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한사람이 아니면 두사람이 탄 승용차 때문에 몇십명이 타고 있는 버스도 꼼짝달싹도 못한채 길위에 서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한 두사람이나 몇십명이나 그 무게가 똑같다는게 한국 대도시 거리의 정의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지하고속도로를 뚫겠다는 서울시의 우격다짐은 아예 승용차를 신주모시듯 하자는 애기나 같다.

이래저래 대도시의 버스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있다. 지난해 11월초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시내버스 업체중 95.6%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에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은 회사가 54개나 됐다. 그래서 버스요금을 올리는건 불가피한 것 같다.

문제는 얼마를 올리느냐 보다 대중교통을 근본적으로 지탱해주는 정책이 없다는데 있다. 우선 버스가 제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합리적인 경영을 위해 구조를 개편하고 정부가 재정보조를 해야한다. 일본이나 유럽각국에 비해 값싼 휘발유에 부가세를 매겨 거둔 돈으로 버스를 뒷받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