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의 9월의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은 일본이 전쟁중에 야기한 「손해와 고통」을 배상하도록 규정하면서 「그러나… 일본국의 자원은… 완전한 배상을 행하고,동시에 다른 채무를 이행하기에는 현재 충분치 못함을 승인한다」는 꼬리를 달았다(제14조). 한국전쟁뒤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던 미국이,한국 등의 배상요구를 억눌러가며,일본에 관용을 베푼 흔적이다.이때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미국의 덜레스 특사를 심판으로 하여,한국의 이승만 대통령과 일본 요시다 시게루(길전무) 수상이 벌인 외교전의 한 고비이기도 했다. 그 스코어는 1승1패.
먼저 요시다의 1승은 조약 당사국이 되기를 바랐던 한국이 뜻을 봉쇄한 것이었다. 이 교섭과정에서는 그는 재일한국인은 모두가 공산주의자이므로 이들을 몽땅 강제송환해야 한다고 덜레스에게 모함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대신 이승만은 청구권 문제에서 1승을 올렸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일본의 전 식민지 등의 재산권 문제를 당사국간 협의에 맡겼으나(제4조 A),미군정의 재산처리의 효력을 일본이 승인한다는 유보조항(제4조 B)를 삽입케 한 것이다. 이 조항은 조약의 최종안이 발표되기 이틀전에야 일본측에 통고돼 저들을 놀라게 했다. 이로써 한국안에 있던 일본인 재산은 모두 한국정부로 귀속되고 일본의 재산청구권은 모두 소멸됐다.
이 이듬해 52년 2월에 시작된 제1차 한·일회담은 말하자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이은 외교전 제2라운드였다. 그 큰 틀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임은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법의 일반 원칙을 들어 끈질기게 청구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저들 계산에 의하면 재한 일본인 재산은 1백20∼1백40억엔,재일한국 재산은 90억∼1백30억엔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이 오히려 일본에 갚을 돈이 있다는게 계산이 된다. 한국측의 당초 요구액 22억달러에 대하여도 법적근거와 증빙을 따져서 일본측이 인정할만한 것은 1억달러 미만이라는 것이었다.
더하여 더 심각한 쟁점은 한·일합병 조약의 효력문제 였다. 한국측이 이들 조약의 원인무효를 주장한데 대하여 일본은 이들 조약이 한국의 독립과 함께 실효된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 차이는 일본의 식민통치의 합법성,정당성과 관계될 뿐아니라,일본측 주장대로 하면 한국측의 요구는 채권·채무와 같은 실정법의 문제로 귀착되고 만다.
이런 대립을 풀 수가 없었기에,한·일회담은 10여년을 끌었고,끝내는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무상 3억달·유상 2억달러)를 통한 정치적 결착이 불가피했다. 그 결과가 65년의 한일 기본협정 제2조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귀걸이·코걸이식의 모호한 규정이며,청구권·경제협력 협정 제2조에서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정신대 문제에서 다시 표출된 한·일 두나라 정부의 기본인식은 여기 근거한다.
그러나 앞서 본 경위는,65년 협정이 한·일간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문제를 얼버무린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해준다. 지금 뜨거운 정신대 문제가 바로 그에 대한 고발이다. 고발의 내용은,한·일간의 문제는 「과거 한때의 불행」이 아니라 오늘에도 뼈에 사무치는 현실이며,미해결·미청산으로 남은 문제들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따로 트지 않고는 비극과 원한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한·일 회담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뜻에서 더욱,지금 진행중인 북한과 일본의 수교교섭은 우리가 마땅히 주시해야 한다.
이 교섭에 임하는 북한의 기본자세는,전쟁배상·전후보상 요구를 빼고는,한·일회담 초기의 우리와 같다. 당연히 한일합병조약의 원인무효를 주장한다. 일본 돈이 아쉽기도,65년 무렵 우리와 마찬가지다.
일본 역시 달라진 것은 없다. 일본은 아예 대북교섭을 한·일협정 틀안에서 진행할 것임을 우리에게 생색내듯 말하고 있다. 배상과 보상을 거부함은 물론,청구권의 법적근거와 증빙을 요구하는 실정법 전술을 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유보조항마저 아랑곳하지 않았던 일본이라,조만간 일본측의 청구권 주장을 들이댈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더구나 북한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교섭의 판세는 여러모로 한·일 회담을 닮았다. 그래서 그 결말이 한·일협정의 재판이 된다면 어떨가. 동족의 눈으로 보아서,그것이 바람직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물은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정신대 문제를 겹쳐놓고 생각할때 더욱 그렇다. 정신대만이 아니라,태평양 전쟁중의 한국인 전몰자와 전범문제,한국인 군인·군속에 대한 보상문제,원폭피해자와 징용자문제,사할린의 미귀환 동포문제 등등 모두가 마찬가지 부정적인 결론으로 있어진다.
어쩔수 없는 이 결론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형국은 마치 남과 북이 민족사의 정당성을 겨루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을 상대로한 과거사 청산은 같은 민족끼리의 공통된 과제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정신대 문제 등에서 65년의 전철을 되풀이 않을 지혜가 아쉽고,그때 덮어버린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여 마무리 지을수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가 격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공통과제를 놓고 남·북이 연대하지 못할 까닯도 없다.
마찬가지로,대일청산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도 마땅히 모색해야 한다. 중국은 배상청구권을 포기하고도 근래에 와서 민간청구권이 살아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홍콩과 대만,동남아 각국에서도 보상청구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럽 여러나라에도 포로학대 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과 연대하여 「인도에 대한 범죄」를 규탄하고,전쟁중에 끼친 「손해와 고통」을 외면하는 전범국이 과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이 있는지를 국제여론에 물어야 한다. 정부가 어물거린다면 시민운동이 나설 도리 밖에 없다. 역설 같지만 이런것들이 일본과 우리를 이웃되게 하는 한 첩경이 아닐까 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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