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같다. 밝고 힘차야 할 한해의 출발부터 어둡기만 하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분야 하나도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갖게해주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사실 올 한해는 최근 몇년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숱한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UR의 파고를 타고 밀려오는 무차별 개방에 직면해있다. 국내적으로도 총선 대선의 양대선거와 기울고 있는 경제의 회생,생명경시 풍조의 만연 등 국민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파고들 현안들이 줄을 잇고있다(그나마 기초·광역자치단체장 선거는 14대 국회구성 이후 실시키로 한 정부의 결정에 대해 찬반양론이 엇갈리는데다 야권의 반발이 거세다).
그런데도 이러한 난제들을 극복하고자하는 의지는 사회 어느분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잘못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분위기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분야로 눈을 돌려보자. 한동안 무역흑자를 내면서 채권국이 된다고 호듭갑을 떨기가 무섭게 적자국으로 떨어졌고 세계시장에서 우리 상품이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의 무역적자만 1백억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승천하는 용이라고 칭송되던 우리경제가 왜 지렁이로 전락했는가. 기업인은 일하기를 싫어하는 풍조와 고임금을 원인으로 꼽는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책임전가가 분하기만하다. 부동산투기 등 앉아서 돈버는 재테크에 열중하느라 적자생존의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첨단기술의 개발을 외면해온 기업들의 변명이 가당치도 않다는 주장인 것이다.
경제분야의 예에서 볼수있듯이 우리사회의 무기력 증세는 사회 구성원간의 책임전가에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했던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가. 그것은 각자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세에 그 원인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지(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우리사회가 앞에 가로놓여 있는 수많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개개 구성원이 최선을 다해야하며 지도층의 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표류원인의 절대적인 몫이 지도층의 도덕성 윤리성 결여에 있기 때문이다.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한다. 그런에 국민의 위임을 받아 법을 만드는 사람에게 그 말은 적용되지 않는 것같다.
5공 청산의 도마위에 올랐던 전직 고위관리들은 국민의 감정이 식을만하니까 차례로 풀려나왔고 수서사건 역시 의혹만 잔뜩 남긴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검찰이 서슬퍼렇게 칼을 빼들었던 재벌급인사들의 그린벨트 훼손사건 역시 국민의 납득이 가지않는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국민들로 하여금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할 수 있는가.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로 대표되는 경제정의실현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걸로 알려진 어느 재벌의 총수는 경제정의실현을 내걸고 신당을 창당했다. 물론 재벌이라고 해서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정치참여에 앞서 경제정의를 실천하려는 최소한의 자세가 아쉬운 것이다.
모두가 지도층의 도덕성 윤리성의 부재가 이같은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회지도층이 근검절약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우리사회가 이렇게까지 병들지 않았을 것이고 가로놓인 문제들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죽으면 이승에서의 모든 것은 다 잃는다. 단지 이름만 남길 뿐이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 이름에 존경을 표하기도 하고 매도하기도 한다.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의 심판이 무섭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국민이나 역사의 심판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지도층이 우선 각성을 하자. 그러면 국민들은 그런 지도층에게 박수를 보내며 함께 고통을 나눠 지고갈 각오를 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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