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눈치경쟁… 「즉석가격표」 유행/원가 개념없어 「어림잡기 값」/값탐색·계산·구입등 3개의 줄서야/생필품은 5시간 기다리기가 보통【모스크바=윤석민특파원】 시장경제 전환을 위한 러시아의 의욕적인 가격자율화 조치는 실시 2주일이 넘었건만 그 혼돈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데다 가격에 대한 노르마(기준)가 없어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현재 모스크바사람들에게 「가격자율화=인상」이란 등식이 팽배해 있다. 가격은 고삐가 풀린 야생마처럼 마구 날뛴다.
산지의 생산인들도 자신의 권리를 남용한다. 그저 부르는게 값이 된다. 무상이나 다름없던 비료·사료 등 생산의 비용과 원가의 산출이 거의 불가능해 어림잡아 가격을 매긴다. 몇몇 기본생필품을 제외하고는 가격의 상한선이 정해지지 않아 무턱대고 올려놓고 보자는게 인간의 심리다. 무너진 국영유통기능을 대신해 재량권이 부여된 각 상점들의 매니저들은 여기에 적당한 마진을 붙여 값은 더욱 뛴다.
그러다보니 웃지못할 기현상이 곳곳서 일어난다. 몇발짝 거리인 같은 구역의 상점들끼리도 가격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한 예다.
모스크바의 상점에는 보통 3개의 줄이 있다. 가격을 알기위한 줄이 하나이고 계산을 하고 물품을 받는 줄이 각각 따로 있다. 따라서 장시간 기다려 확인한 가격이 터무니 없으면 짜증은 가중된다. 가격 비교를 위해 이가게 저가게로 옮겨다니며 줄서있는 시간은 대략 하루중 5시간이라고 이곳 신문은 비꼬았다. 지난해 3시간보다 평균 2시간을 「생필품 사냥」하는데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옆의 상점보다 너무 싼가격에 판매하던 상점이 문을 걸어잠근 채 허겁지겁 가격표를 고쳐다는 진풍경도 목격된다. 칼리닌 프로스펙트 인근의 한 우유가게는 버터 1㎏에 58루블의 정가를 매겼다 코너의 다른 가게가 1백20루블을 받고있자 안의 손님을 모두 내몰고 가격을 1백루블로 바꿔달았다. 유리창너머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어이없기 보다는 『우롱당한 듯해 분노가 치민다』고 한 청년은 말했다.
때문에 요즘 모스크바사람들의 주요 일상사 가운데 하나는 가격에 대한 정보교환이다. 어디에 적당한 가격의 물건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곳과 가까운데 위치한 친지에게 알리기 위해 우선 전화부터 들고 보는게 상례이다. 또한 물건을 사기위해 장시간 직장을 비워도 누구하나 탓할 수 없다. 모두가 같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업의 능률은 갈수록 떨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루블화의 평가절하와 추가적인 물가인상이 조만간 단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지며 불안은 증폭된다.
물가인상과 함께 신년부터 각자의 월급이 1백% 이내에서 인상됐지만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재기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되는 한 요인이 돼 버렸다. 현실화된 가격에 의해 어느정도 선반에 나오기 시작한 물품들도 이 때문에 금세 바닥난다. 정부는 안정을 요구하며 국민들의 자제를 호소하지만 불신의 벽은 더욱 두꺼워져갈 뿐이다.
그렇다고 정책의 역기능만이 불거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의 안정세가 뚜렷해지는 희망적 관측도 나온다. 즉 수요·공급의 접점을 찾아 적정가격이 형성되는 조짐이다.
출하가격을 1ℓ당 45루블로 책정했던 한 우유공장은 상점에서 팔리지않은 제품들이 계속 반품돼오자 1주일지나 38루블로 가격을 낮춰 부르고 있다.
택시의 경우,1일 사납금을 5백60루블로 산정했던 한 회사는 손님이 없어 빈채로 거리를 헤맨 기사들의 3일간에 걸친 파업끝에 3백50루블로 사납금을 인하시켰다. 이 기간중 사납금 부담을 안은 기사들은 손님에게 미터요금외의 가격을 불렀고 손님들은 택시를 아예 외면해 버렸다. 회사가 사납금을 인하한 후 이 택시기사들은 현재 미터요금을 받는다.
꽁꽁언 동토의 지표아래서는 보이지 않는 변혁의 기운이 움튼다. 그러나 고통과 인내속에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힘겨운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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