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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제질서」의 명암/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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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제질서」의 명암/김영작 국민대·국제정치학(목요진단)

입력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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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불안요소냉전이 종결되면서부터 「새로운 국제질서」(New World Order)라는 말이 널리 구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원리에 의해 어떤 모습으로 정착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더욱이 탈냉전시대의 세계 주요국가들의 움직임이 충분히 바람직스러운 것인지에 관해서도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세계가 군사적 패권다툼과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가고있다는 점에서는 냉전시대에 비해 「새롭고 밝은 세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군사력 대신 경제력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새로운 국제질서」라는 이념에 함축된 「바람직한 세계질서」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경제력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에서도 문제의 핵심은 「경쟁과 대결」이냐 「협력에 의한 공존공영」이냐에 있다.

목하 세계각국이 경제분야에서 자유무역주의의 원칙을 표방하면서도 폐쇄적 국가이익을 우선시키고 심지어는 지역주의와 경제적 무국경주의마저도 국가이익 추구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양차대전의 원인에 관한 역사적 교훈에 비추어 보더라도 오늘날의 이른바 「새로운 국제질서」의 심각한 불안요소가 아닐 수 없다. 부시 미 대통령의 아·태지역 순방과 미야자와 일본총리의 방한에도 그같은 불안요소가 짙게 나타나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의 과오

부시 미 대통령의 아·태 순방은 역설적으로도 그가 주창해 오던 냉전후의 「새로운 질서」의 문제점을 스스로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이번 순방은 「낙제점」 이었다는 것이 미국내의 일반적인 평가인 것 같다. 그 주된 논거는 첫째 순방결과가 미국내의 「일자리 창출」 곧 미국의 국가이익 달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과,둘째 건강상의 문제점을 노출시켜 재선을 노리는 부시 개인의 정치적 목적에도 역효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시의 더 큰 과오는 그의 이번 순방이 당초부터 「낙제점」의 평가밖에 받을 수 없도록 목표가 잘못 설정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적 명분과 논리의 우선순위가 잘못 책정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걸프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부터 부시 대통령은 두개의 서로 다른 모토(Motto)를 내세우고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세계질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목표중 부시는 이번 순방에서 미국적 특수이념인 「미국우선」을 지나치게 앞세움으로써 그가 주창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라는 것이 보편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버렸다.

그것은 미국민을 향한 국내용 모토로서는 적절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세계를 향한 설득력 있는 모토는 못되었다.

미국의 초조함을 표출시켜 지극히 강대국답지 못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도 「일본 우선주의」적 대응에 봉착할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부시가 내세워야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세계질서」,그것도 미국 일극중심의 「새 질서」가 아니라,이 지역국가들의 공존공영을 보장하는 「새로운 질서」였어야 했고,미국의 고용창출은 그 결과로 얻어지는 부수적 결실이었어야 했다.

○일본의 「일국번영주의」

세계최대의 채권국·무역흑자국이자 국제경제의 중심국으로 떠오른 일본의 국제적 대응에도 「폐쇄적 국익우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한국 등의 대일무역 적자의 원인이 해당국가 내부의 기업체질에 문제가 있다는 일본의 지적에도 타당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냉전시대부터 미국·한국 등의 안보출혈에 의해 유리한 경제체질을 구축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해온 일본이 매년 누적되어가는 무역불균형을 「상품의 질」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온당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같은 논리와 자세로는 경제대국으로서의 「국제적 공헌」과 「새로운 질서」는 공중분해 될 수밖에 없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최근 일본이 「닫힌 사회」에로의 성향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관동대지진때의 「조선인」에 대한 모략을 연상케 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실무근의 유언비어,여론조사 결과 나타난 개도국에 대한 원조 증액의 반대,미국의 개방요구에 대한 「혐미」·「반미」 감정의 확산 등은 모두 최근의 일본이 「일국 풍요주의」에 도취되어 「닫힌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예증들이라 하겠다.

이같이 미·일 양국이 제각기 「자국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한 「동경선언」과 「행동계획」에서의 합의점이 무엇이든간에,미·일간의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일 양국은 「동경선언」에서 두 나라간의 「글로벌 파트너십」(지구규모의 협력)」에 의한 「새로운 질서」를 주창하고 있다.

혹이나 그것이 경제력 중심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미·일 동반패권이나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영향력 증대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그것은 여타 아·태지역 국가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미·일의 발상의 전환과 아·태지역 국가들의 유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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