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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공약·작은 공약(정경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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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공약·작은 공약(정경희 칼럼)

입력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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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은나라때 고종은 선왕이 돌아간 뒤 3년동안 상중에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가 은나라 역사상 정치가 가장 잘된 때였다고 한다. 천자가 3년동안 말을 하지 않았지만,관원들은 대신의 지휘밑에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고봉 기대승은 선조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은나라의 고종임금처럼 신하를 잘 쓰는데 있다고 했다. 그것을 『어진사람을 골라맡겨 책임을 다하도록 한다』해서 「위임성책」이라 했다. 임금은 다만 사람을 고를 뿐이다.

20세기들어 가장 오랫동안 수상자리를 지켰던 영국의 여장부 마거릿 대처는 아침·저녁 남편의 끼니만큼은 반드시 손수 마련했다. 한 나라의 수상이었지만,남편 시중을 위해 장보기도 손수했다. 나라 살림은 장관들 밑에 국록을 먹는 관료들이 맡아 하는 만큼 수상이란 결코 바쁠 게 없는 자리다.

그 옛날 백성위에 군림했던 임금님이나,세계 민주정치의 최선진국인 영국의 수상에다 댄다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웬일인지 엄청나게 많은 일에 쫓기는 자리인 것 같다.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10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총 4백59건의 공약을 적어둔 수첩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서울에 있을 때나 지방에 갈때나 늘 이 수첩을 내놓고 확인한다했다. 이 중 착수된게 4백48건,완성된게 1백75건이라 했다. 나머지 2백73건이 추진중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공약을 챙기는 대통령은 세계에 『나 혼자 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런 계산이라면 지난 4년동안 한해 1백12건씩 챙겼다는 얘기가 된다. 허구 헌 날 공약에 매달렸어야 했을 것이다.

무슨 공약이 그렇게 많았을까? 아마도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해야될 지방숙원사업이 상당수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나라살림을 맡은 대통령이 아니라,당연히 지방자치의 몫이 됐어야했을 일들이 태반이었을 게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국가경영에 필수적인 금융실명제 같은 큰 공약은 헌 신짝버리듯했다. 게다가 지방자치의 공약도 저버리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미루겠다고 했다.

선거에서 돈을 뿌리는 「큰 손」은 가난한 야당보다 여당이다. 정주영씨도 야당에 돈을 준 적은 없다고 했다. 성급한 개발공약을 남발하고,기공식을 올리는 것도 정부다. 선거인플레의 문제는 정부·여당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깨끗한 선거이지,선거자체가 아니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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