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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 견뎌온 음악의 샘터/르네상스(그때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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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 견뎌온 음악의 샘터/르네상스(그때 그 자리)

입력
1992.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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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즐기며 「정신의 허기」 달래/대구시절 거쳐 60년 종로 정착후 전성기/숱한 예술인단골… 즉흥지휘 “일상풍경”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에 사는 박용기씨(76)는 거동이 불편한 몸이지만 덕수궁 나들이를 여생의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석조전 3층의 음악자료관에 가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르네상스」 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방에는 박씨가 87년 문예진흥원에 기증한 클래식음반 1만여장이 장서처럼 꽃힌채 음악 애호가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고궁안의 음악도서관」이 돼버렸지만 「르네상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 음악감상실로 51년 전란속에 대구 행촌동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른다.

르네상스는 54년 상경,종로구 인사동에서 6년간 문을 열다 60년 12월부터 종로1가 영안빌딩 4층에 자리잡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자주빛 커튼을 제치고 50여평의 실내에 들어서면 베토벤 모차르트 슈만 쇼스타고비치의 음악을 만날 수 있었고,바흐 헨델 슈베르트의 석고두상은 고뇌하고 번민하던 그 시대 젊은이의 위안이었다.

희미한 조명과 프랑스 살롱풍 백색등받이 의자가 어울리던 르네상스에 오라토리오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면 벌떡 일어나 만년필을 지휘봉 삼아 온몸으로 정확하게 지휘하던 대학생. 물한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도 성악곡을 따라부르던 음악도.

원고지를 쌓아놓고 작품구상에 몰두하거나 화구까지 챙겨와 그림을 그리던 문인·화가들. 구석진 자리에 처박혀 코를 골던 룸펜. 이같은 군상들의 행태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던 곳이 종로 빌딩속 르네상스였다.

모든 것이 궁핍하던 시절이지만 르네상스에만 가면 정신적 포만감을 느끼고 안식과 낭만을 추구할 수 있어 단발머리 교복차림의 여고생부터 대학생연인,공무원,예술인,실업자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의 단골은 늘어만 갔다.

그래서 당시 젊은이들은 「르네상스 00년도생」으로 연배를 따질만큼 르네상스의 음악과 분위기를 사랑했다.

삐걱거리는 나무의자 32개와 나무껍질을 켜켜이 발라 방음벽을 만들어 시작했던 대구 르네상스는 당시 미국 음악전문지 「에튀드」가 『한국의 음악은 전쟁속에서도 살아있다』고 평할만큼 피란온 문화예술인 종군기자 장교 상이용사들의 사랑방이었다.

르네상스에 비치돼있던 음반들은 레코드 1백년사를 한눈에 볼수있는 것들로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인 판소리 「적벽가」(1908년판)를 비롯,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년판),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안 멜바가 부른 쇼송의 「리라꽃필무렵」(1903년),그리그가 작곡·연주한 피아노협주곡 등 구할수도,돈으로 가치를 따질수도 없는 희귀품들이 많았다.

또 매킨토시 진공관앰프와 JBL하스필드스피커시스템,듀알턴테이블시스템 등 당시로선 최신식이었던 오디오기기와 1만여장의 SP,LP판들은 음악 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주인 박씨는 일제시대 명치대 유학시절부터 음반을 수집,1·4후퇴때는 세간살이는 팽개치고 음반만 트럭에 싣고 피란갈 정도였다.

르네상스는 문인 김동리 전봉건 신동엽,음악가 나운영 김만복,화가 김환기 변종하씨 등 「이름난 단골」로도 유명하다.

베토벤 운명교향곡이 울리면 언제나 열정적으로 지휘하던 독문학자 전혜린씨는 곡이 끝난후 「에트랑제들이여… 당신들의 낙원 르네상스에서…」 등 감성번득이는 쪽지와 담배를 돌리곤 했다.

음악감상의 삼매경에 빠져들면 『붉은불 파란불이 번개처럼 지나간다』고 뇌까리던 시인 양명문씨는 동료문인인 김자림씨와 이곳에서 만나 열애끝에 결혼했다.

시인 천상병씨는 음악에 푹빠진 표정이 벽면에 걸려있던 베토벤 석고두상을 닮았다고해서 「쁘띠베토벤」이란 별명을 얻었고 정경화·명훈 남매는 일요일마다 이곳에서 하루종일 음악을 감상하며 연주기법을 익혔다. 70년대 산업화의 물결속에 디스코·오디오에 밀려 83년에는 폐업위기에 처했으나 『르네상스는 우리 모두의 고향으로 절대 문닫게 할 수 없다』는 단골들의 성화때문에 87년까지 유지됐다.<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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