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봄 미하원의 아시아통 스티븐 솔라즈 의원은 당시 우리 정정을 두고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대의 기관차에 비유했었다. 박종철군의 사망,4·13 개헌논의 중단으로 일기 시작한 거대한 국민적 저항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부와의 대결양상은 그렇게 보여지기에 충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다행히 두대의 기관차는 수많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대충돌의 참사없이 그해 6월29일의 6·29선언,10월29일 직선제헌법공포,12월16일 대통령선거 등 근 30년만에 우리에게 민주정부를 탄생시켰었다.
○「탈선」의 위기감
그럼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올해는 어떤가. 두대의 기관차가 마주달려오는 형국은 적어도 아니라 하더라도 이 해에 있을 양대선거 결과에서 국민들이 동의를 느끼지 못하고,내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지 못하게되는 경우 마치 길고긴 열차간의 연결고리가 끊기고 탈선의 위험을 감수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그것도 몇몇 사람만이 아닌 거의 모든 국민이 느끼면서 1992년을 맞고 있다는 것이 올해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우리에겐 몇번 고빗길의 해가 있었다. 해방되던 1945년,6·25가 터진 1950년,1960년의 4·19,그리고 가까이는 6·10과 6·29를 있게하고 5·16후의 권위주의통치를 청산해낸 1987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의 민주사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될 1987년은 문제의 제기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 주역이 국민이었다는 점에서 성숙한 민의 승리의 해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해 1월1일자 한국일보에 소개된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와의 공동조사결과는 마치 1987년의 운명을 예고하듯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를 적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중요한 한가지 발견은 안정을 바라고 보수성향을 띨것으로 생각됐던 중산층이 정치적 변화를 강력히 바라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얼마간 보수적이지만 정치적 후진성이란 맥락에선 상당히 진보적이며 정치적 현상타파를 바라고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의 이들의 희망과 좌절,회의와 확신,비판과 결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산층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은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해 6월 6·10대회의 정경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가득히 거리를 메웠던 항의의 인파,흔히 보는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흰 와이셔츠 차림의 「시민」들이 주역이었던 이때의 일은 그래서 그후 「6월 시민항쟁」으로 명명되었다. 지금에 와서 6·29가 누구의 작품이냐의 문제는 그래서 끼리끼리의 시비의 대상은 될수 있어도 시민의 관심을 사로잡을수가 없는 것이다.
새헌법이 발의되고 국민투표에 부쳐지기전부터 전국은 1노3김의 대선열기에 빠져들었고 자욱한 최루가스,화염병,돌팔매,플라스틱 방패가 동원되는 속에서도 시민들은 새헌법하의 생소한 절차들을 굳건히 지키며 훌륭하게 마무리해나갔다. 그야말로 민에 의한 1987년의 완성이었던 것이다.
새해들자 정치권에 대한 관심집중은 매우 강렬하다. 우리가 납득할만한 국회의원 후보·대통령후보를 내놓아 줄것인가,휘청거리는 경제를 바로세우는데 진력해주고 남북을 포함,거세게 일고있는 세계사적 재편을 뒤지지 않게 우리의 역량을 결집시키는데 앞장서 줄것인가. 이 모든것을 민주의 기틀아래서 진행될 수 있게 할 것인가 등 이 모든 물음들을 정치권의 리더십이 답해야하기 때문이다.
양대선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후보가시화,물갈이 등이 열심히 운위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국민들의 역할이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싫든 좋든 주어진 후보속에서 어느 하나를 골라야하는 것뿐이다. 선거란 이같이 유권자가 아무리 성실히 임해도 이런 약점을 원천적으로 안고 출발하는 제도인한 정치권의 책임은 그만큼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금년말쯤 우리국민 우리사회가 어떤 모양으로 있을것인가,희망과 결집에 있을것인가,좌절과 와해도 또다시 저항의 대열에 설것인가는 전적으로 정치권의 판구성에 달렸음도 그 때문이다.
○희망줄 정치판을
리더십을 달랑 「지도력」으로만 표현하기에는 올해의 기대가 너무 큰것 같다. 따라서 「집단목표를 성취하기위해 사람들을 동원 조직하는 행동」 「집단을 목표점으로 지향하게하고 응집력을 구축,제대로 굴러가게하는 역할」 「집단을 이끌어가는 중심적 지위」 「구성원의 사상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지도하는 인물」 등 다소 교과서적이긴하나 리더십이란 이런 모든 의미를 포괄함을 우리 정치권의 「리더」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향후5년」을 가질 수 있다. 민주화도 경제도 성숙한 다음단계로 넘어가느냐 아니면 지난날의 시행착오들을 되풀이해야하는가도 판가름된다. 「유권자혁명」이나 「아래로부터의 견제」니 하지만 올 한해 시민의 역할이란 편견이나 압력에 영향받지 않은 투표권의 행사,여기에 더한다면 지난 4년여에 길러진 질서수호를 위한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 뿐이다.
올해의 모양을 그리는 것은 전적으로 「리더」들의 몫이다.<편집담당 상무>편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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