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광나루/놀잇배 옛 정취는 간데없고…(그때 그자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광나루/놀잇배 옛 정취는 간데없고…(그때 그자리)

입력
1992.01.13 00:00
0 0

◎붐비던 강변엔 아파트 들어서/매운탕 명소 춘풍정도 기억만70년대초까지만 해도 서울의 여름은 아차산의 산자락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광나루 백사장에서부터 시작됐다. 광나루건너 지금의 천호동 강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백사장에 조성된 유원지는 세검정·정릉 등과 함께 서울에서 손꼽히던 여름 피서지였다.

그러나 현재 워커힐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성동구 광장동 광진교 북단아래의 옛 광나루터 일대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한쪽에서는 오피스텔 신축공사가 한창 이어서 놀잇배가 한가롭던 과거의 정취는 느낄수 없다.

나루건너 여름철이면 피서인파로 발디딜틈이 없던 백사장에는 군데군데 가건물이 을씨년 스럽고 일부는 한강시민공원으로 조성돼 있으나 찾는이가 별로 없다.

강폭이 넓어 광나루라 불린 이곳은 옛날에는 광진·광진도로도 통했고 버드나무숲이 많은 나루라해서 양진이라고도 했다.

광나루도 선장에는 나룻배 대신 모터보트들이 들어서 있으나 한강에서 나룻배가 유일한 도강수단 일때는 황포돛배에 콩·팥·수수 등 잡곡이나 땔감을 가듣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던 도부꾼(보부상)들로 성시를 이뤘다. 6대째 광나루에서 고기를 잡아 팔거나 놀잇배를 띄워 생활해온 강순정씨(77·성동구 광장동 288의13)는 『광나루는 우리집안이 선조대대로 부치던 논밭과도 같다』면서 『요즘도 강변에 서면 광나루에 얽힌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고 말했다.

30년대에는 장마로 불어난 강에 강원·경기 산간지방에서 벌목한 나무를 줄줄이 엮어만든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뗏목꾼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춘천에서 뗏목을 타면 달포가 걸려 광나루에 닿곤하던 시절이다. 뗏목꾼들과 도부꾼들은 광나루에 며칠씩 머물며 가져온 물건을 팔고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느라 이 일대에는 객주집도 번창했다.

천호대교 옆에서 비좁은 몸체로 자동차 매연에 묻혀 있는 광진교가 1936년 당시의 경기 광주군 구천면(현재의 천호동)과 광나루쪽을 잇게되자 나룻배는 차츰 줄게 되었으나 유원지행이 편해졌다.

3년뒤 경춘철도가 개통되면서 보름까지 걸리던 뱃길이 반나절로 줄어드는 등 한강과 광나루에도 근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서울사람들은 여름이면 가족단위로 밀짚모자를 쓰고 김밥 등 먹을 것을 싸들고 동대문에서 출발하는 기동차를 타고 왕십리와 뚝섬을 거쳐 광나루유원지까지 가곤했다.

기동차는 내연기관의 동력을 이용해 운행하는 철도차량으로 일종의 궤도차. 기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던 당시 어린이들은 지금의 지하철 전동차를 즐겨 타듯 기동차타기를 좋아했다.

60년대초 을지로6가에서 천호동을 왕복하는 시영버스가 생겨 유원지행은 한결 쉬워졌으나 버스와 기동차를 못탄 행락객들은 웬만한 거리까지 걸어가기 일쑤였다. 광나루는 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깊어 잉어·쏘가리 등 민물고기가 많이 잡히는데다 맛이 좋아 「광나루 물고기」는 특별히 쳐주었다.

특히 현재 영풍오피스텔 신축공사장 자리에 있던 매운탕 전문요리집 춘풍정은 풍광좋고 매운탕맛이 뛰어나 미식가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러나 70년대중반 팔당과 소양강주변에 유원지가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광나루는 사향길로 접어들다 한강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급격한 수질오염으로 「광나루시대」는 막을 내렸다.

80년초에는 20여척의 놀잇배와 선상횟집 등이 심심치않게 찾아오는 행락객들로 그런대로 수지를 맞췄지만 한강에 유람선이 뜨고 잡아올린 물고기가 수질오염으로 옛 맛을 잃자 모두 자취를 감췄다. 광나루터 옆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용호씨(59·성동구 광장동 231)는 『4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광나루가 요즘처럼 황량한 때는 없었다』며 묵묵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았다.<이성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