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여행할 때의 풍경이 생각난다. 기차 창가에 비친 농촌가옥들의 공통된 모습은 집집마다 창문이 넓고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밝게 트여 있었다. 넓은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지없이 평화스럽게 보였다.창문없는 집에 산다는 것을 상상만해도 숨이 막힐것 같다. 마치 감옥을 연상하게 된다. 어디 감옥뿐인가?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안과 밖을 훤히 들여다볼 수 없는 사회는 마치 창문없는 집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자. 어디를 가도 숨이 막힐 정도로 막혀 있고 답답할 뿐이다.
특히 국민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정객들의 하는 일을 보면 더욱 답답하다. 무슨 꿍꿍이 속이 그렇게도 많은지 모두들 밀실에 사는 것 같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권력인가를 분간하기 어렵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모두들 안개속에 움직이는 것 같이 시야가 트이질 않는다.
민주주의란 투명 유리집과 같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고,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실은 그렇질 않다.
6공화국을 태동케 한 6·29선언도 그 실상이 정확히 밝혀지질 않고 있다. 최근 6·29 구상이 노태우씨가 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씨라는 글을 읽고 국민은 그동안 줄곧 기만당해 왔구나하는 어떤 배신감을 느낀다.
최근 여당의 대권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양태라든지,야당의 공천작업에 나타난 꿍꿍이 속이라든지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이다.
6공화국 4년동안 물가상승,국제수지 악화,사회혼란,노사분규,수서사건 등 각종 비리속에서도 국민들이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과정에서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민은 국정이 민주화되기를 갈망해 왔었다.
그런데 권력을 창출하는 정당들의 양태는 너무 비민주적이다. 비민주적인 정당들이 어찌 국민의 정당이라 할 수 있고,민주주의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권에서 논란되고 있는 「후계구도」라든지 「지명」이라는 말 자체가 듣기 싫다. 이런 어휘 자체가 국민의 의사와 배치되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가 후보가 되느냐 문제보다 민주화된 정당을 원하고 있다. 정당내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어찌 정치 민주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특정인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양태가 계속 되는한 국정의 민주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6공화국도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4년간 정치가 이 땅에 남긴 것은 정치권 전반에 걸쳐 불신을 심화시켜온 것 뿐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정치권의 신뢰를 회복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밀실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정당원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몇몇 지도층의 밀실에서 정권이 창출되고,국회의원이 뽑힌다면 6공화국 이후의 나라상황도 과거의 답습에 불과하리라는 우려를 낳게 된다.
정치인은 위를 바라보기 보다는 국민을 바라보기 바란다. 일시적인 인기술이나,이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국가 장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는 무엇이 이롭느냐 보다는 무엇이 옳은가를,누가 내편인가 보다는 누가 정당한가를 찾아야 할때이다.
지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지각의 변동을 느낀다. 종래처럼 획일적인 권위주의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정치도 특정인 중심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앞으로 있을 4대선거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 내려야 할 당위성을 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부터 체질변화가 되어야 한다.
지구당원에 의해 지역위원장이 뽑혀지고,국회의원 후보가 추천되고,정당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대통령후보가 경선되는 민주적인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당에 의해 정권이 창출될 때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될 것이다.
국민은 지금 투명 유리집에 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40여년간 권위주의와 밀실정치에 익숙해온 탓으로 투명 유리집을 어떻게 건축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때 국정을 책임맡은 정치인들이 솔선해서 투명 유리집을 건축해서 그 안에 국민이 살도록 해야할 것 아닌가?
국민이 국정을 훤히 들여다 보면서 페어플레이하는 정치인을 보고 때로는 흥분도 하고,때로는 박수도 조소도 보낼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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