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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합시다­./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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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합시다­./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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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주변에는 옛 말이 많다. 왕조시대에나 걸맞을 그런 말속에,대통령의 이미지,또는 우리의 전통적인 정치의식이 스며 있는지도 모른다.예컨대,지금은 없어졌지만,한동안 하사라는 말이 흔했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격려금을 하사금 기념품은 하사품이라 한 따위다. 그래서 대통령이 비명에 간 사건은 「대통령 시해사건」이 된다. 사전에 보면,하사는 「임금이 신하에게 물건을 줌」,시해는 「부모나 임금을 죽임」이다. 대통령의 이미지가 사뭇 왕조적이었음을 알수가 있다.

그런 말중에 지금도 살아 있는 말로는 보필이 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일수록 「대통령을 포필한다」는 투로 이 말을 즐긴다. 그러나 사전에 보면 보필은 「임금을 도움」이며,그런 자리를 보필지임,그런 사람을 보필지신이라고 한다. 지금 세상에 「신」이 있을 수 없다면,보필은 인플레가 지나친 높임말이다. 과공비례일 수도 있다.

그러면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헌법에 들어있다. 그 86조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그 다음 87조에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라 한 것이 그 해답이다.

근래에 와서는 또 대권이란 말이 대유행이다. 「대권경쟁」이니,「대권후보」니 하는 것이 그 쓰임이다. 우리말 사전에 「국가의 원수가 국가를 통어하는 헌법상의 권한」이라는 풀이가 나와 있으니 대권이란 말뜻이 의문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좀 큰 한문사전을 보면 대권이란 「천자의 권병」이다. 이에 연유해서,일본의 구헌법은 헌법기관의 참여없이 행사하는 천황의 권력을 대권이라 했음도 읽을수가 있다. 그 흔한 대권이란 말이 아무래도 찜찜한 까닭이 이것이다.

낙점이란 말도 근래에 와서 심심찮게 듣는다. 예를들어 개각을 할때,또는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공천할때 『대통령의 낙점만을 남겨놓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대강은 「대통령의 마지막 결정」쯤의 뜻일 것이다.

그러나 낙점 역시 사전에서 보면 「옛날 버슬을 시킬때에 3배수로 추천된 후보자(삼망) 가운데서,뽑을 대상자의 이름 위에 임금이 직접 점을 찍음」이라 나온다. 사뭇 왕조적이다. 대통령과 임금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어제 10일에 있은 대통령 연두회견의 큰 줄기,기자들이 대통령에게 물은 초점도,요컨대 그 왕조적인 말로 대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낙점은 했느냐에 있었던 것같다. 특정인을 거명한 질문이 거듭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대답은 민주적인 절차의 표방으로 일관했다. 아무래도 질문과 답변의 이가 맞지 않은 것 같다. 회견이 끝난 뒤에 남는 의문 역시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른바 4자회담의 내용은 무엇이며,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이냐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문을 도처에 남긴 연두회견이 과연 한해 정치안정을 가져올 수 있을지의 의구심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 후보를 총선 뒤 경선할 것임을 거듭 강조하면서,노조위원장도 경선하고,농협·축협회장 경제단체장도 경선하며,심지어 국민학교 반장도 경선함을 말했다. 후보의 지명은 민주정당과 민주투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경선=민주적」의 도식에서 대통령은 한대목을 빠뜨렸다. 국민학교 반장으로부터 대통령 후보까지 다 경선을 하는데,그렇다면 대통령이 거느리는 대여당의 국회의원후보자 공천은 어떠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대통령 연두회견을 보고,곁가지 같은 이런 물음을 제기하는 데는 다 까닭이 있다.

3월 개학과 함께 새 학년이 시작되듯,이제 대통령 연두회견으로 92정치연도가 시작된다. 대통령이 내각제포기,자치단체장선거 연기를 선언했으니,정치일정도 대강은 확정이 됐다. 그래서 정치판은 곧 총선판으로 될 것이고,그 서두는 공천다툼이 될 것이다. 공천이라는 새 정치연도의 첫 단추부터 바로 끼워야 함을 말할 계제는 지금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천이란 무엇인가. 「여러 사람의 합의에 의하여 천거함」이다. 그 뜻대로 정당법 31조는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추천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말투를 빌면 민주적=경선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민자당헌은 국회의원 공천을 「총재가 최고위원들과 협의하여 결정한다」고만 했다. 연두회견을 보아서는 대통령 생각도 마찬가지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망정(삼망을 정함)도 없는 낙점방식 아닌가. 달리 고려할 것이 있다면,이른바 최고 위원들의 지분뿐이다. 대통령의 경선논리와 배치될 뿐 아니라 정헌법과도 어긋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다. 공천이란 무엇인가. 양당제를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선거를 통한 국민의 선택권 50%를 기속한다. 지금처럼 양당의 지역할거가 뚜렷한 현실에서는 그것이 선거의 100%일수가 있다.

이런 공천을 권력자와의 친소,계파간의 충성심,심지어 돈을 앞세운 운동이 좌우한다면 어찌 되는가. 그것은 선거를 통한 엽관·매직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뜻에서 낙점방식 공천은 비민주적일뿐 아니라 부도덕한 것일 수도 있다.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제8조2항) 명문에 비추어 분명한 위헌이다.

지나간 경험으로 해도,13대 국회를 둘러싼 정치윤리와 의원자질 시비의 씨앗이 낙점 공천에서 싹텄음은 분명한 일이다. 이 전철을 피해가는 길은 공천방식을 바꾸는 것 뿐이다. 찍어 말하면 공천을 위한 경선이요,더 나아가서는 정당의 민주화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의 투철 경선윤리에 공명한다. 그것이 정당의 민주화 없는 정치의 민주화가 있을 수 없다는 소신에 뿌리한 것이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을 담아 이렇게 화답하려한다.

대통령후보는 경선합시다.

국회의원 공천도 경선합시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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