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복돈」 소동이 일고 있다. 컬러복사기로 5천원권,1만원권 지폐를 5∼6배 크기로 확대복사하여 비닐코팅한 것이 복돈인데,이를 한장에 1천원씩 받고 팔던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통화유사물 판매혐의로 경찰에 잡혔다.복돈장사들이 지방에 따라 구속되기도 하고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하는 등 혼선을 빚자 대검찰청은 불구속으로 수사하라고 일선검찰에 지시했다. 「복돈」은 그 모양자체가 유사통화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복돈을 팔다 잡힌 사람들은 대부분 노점상들인데 그들에게 복돈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복돈을 사는 심리상태는 무엇일까,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는 부산한 시기에 찬바람 부는 길바닥에 복돈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들,그들에게 1천원을 건네주고 비닐코팅한 돈모양의 종이한장을 받아드는 행인들…. 그 거리풍경을 그려보는 동안 우리는 슬퍼진다.
짐작컨대 복돈은 새해에 부자가 되기를 빌며 집에 간직하는 일종의 부적으로 지난 연말 누군가 고안해 낸 것 같다. 복돈을 만든 사람,파는 사람,사는 사람들은 모두 돈과 별로 인연이 없는 서민들이다. 돈과 별로 인연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연말연시에 복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에겐 그 옛날부터 정월대보름에 복조리를 주고 받는 풍습이 있었다. 정월대보름 이른 새벽 대문고리에 조리를 걸어두면 한해동안 식복을 누린다고 믿었다. 『복조리 사시오,복조리 사시오』라고 소리치며 골목마다 조리장사가 지나가던 열나흗날 저녁,문을 열고나와 조리를 사든 사람들의 가슴엔 이미 복을 받은 기쁨이 가득했었다.
복돈은 복조리에 비해 너무 직접적이고,원색적이다. 조리 역시 쌀을 일때 쓰는 물건이니 일년내 쌀밥을 먹게 해달라는 직접적인 축원이 깃든 것이지만 5천원·1만원짜리 돈을 확대해 만든 복돈처럼 상상력조차 발붙일곳 없는 원색적인 부적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원색적인 가난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되는데,느닷없이 복돈소동이 일고 있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이제 굶지는 않게 됐으나 돈에 대한 욕망과 한은 점점 더 원색적으로 이글거리게 된 것이 아닐까.
정주영씨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몇십억에서 백억까지의 정치자금을 바쳐왔다고 스스로 폭로했다. 복돈을 사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재벌이 되는 것일까,대통령이 되는 것일까. 복돈이 나도는 것은 확실히 좋은 징조가 아니다.<편집국 국차장>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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