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비해 조숙했던 이모양(16)은 서울 모중학 2학년때인 재작년부터 친구·선배언니들과 카페·레스토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오빠 밑에서 별로 부족함을 모르고 살던 이양은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면서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
카페에 들어서면 언제나 합석을 요구하는 「아저씨」들이 있었고 잠깐 어리광만 피우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큰 용돈도 생겼다. 신나게 놀면서 돈도 생기는 이 비밀스러운 재미에 비해 공부나 부모들의 간섭은 분하기만 했다.
결국 이양은 지난해 지긋지긋한 학교와 집을 떠나 「독립」했다. 이양과 같은 「영계」를 환영하는 곳은 서울시내 어디나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땀흘리며 힘들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각박한 사회지만 14살 어린소녀의 비뚤어진 허영을 채워주는데는 서울은 너무나도 넉넉한 곳이었다.
변두리지역에서 웬만큼 이력을 쌓은 이양은 한달전 훨씬더 화려하고 벌이가 좋은 송파구 삼전동 B카페에 취직하면서 전셋방을 마련할 만큼 「기반」을 잡았다. 밀실이 딸린 이곳은 나이 지긋한 「사장님」들이 주고객이었다.
술에 취해 빙글빙글 돌아가던 신나는 세상은 그러나 지난 6일 밤 경찰이 이곳을 덮치면서 회전을 멈추었다. 닳고닳은 호스티스의 모습으로 변한 어린 딸을 보고 부모들은 할말을 잃었다.
『잘못했다』고 수없이 부모에게 용서를 빈 이양은 그러나 집에 돌아온지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7일 하오 다시 집을 나갔다.
카페근처 동료 접대부 임모양(17)의 사글세방을 찾아간 이양은 이틀간 내내 뭔가를 불안해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8일 밤 갑자기 온몸을 떨며 거품을 물고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뒀다.
경찰은 이양이 평소의 과음이나 약물과용으로 인해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했다.<홍희곤기자>홍희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