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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 낙지골목/톡 쏘는 매운맛 서민시름 잊게(그때 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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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 낙지골목/톡 쏘는 매운맛 서민시름 잊게(그때 그자리)

입력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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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백30∼3백원 부담없어 학생도 발길/양주동씨 단골… 70년대중반 재개발 밀려/전성기 50여곳 성업회사원 조모씨(48·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지난 연말 3차례의 망년회중 무교동 낙지집에서 있었던 고교동창 모임이 가장 뜻깊었다고 생각한다.

조씨는 그날 대학시절과 다름없이 삐걱거리는 긴 의자에 둘러 앉아 20여년전과 똑같이 입안에 불이 날정도로 매운 낙지볶음을 안주로 옛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청년으로 돌아갔다.

원래 낙지집은 서린동 종로1가 일대의 2∼3개 골목안에 밀집돼 있었으나 길건너 번화한 무교동이 가까워 사람들은 무교동 낙지골목이라고 불렀다.

「엠파이어」 「월드컵」 「유토피아」 등 대형맥주홀과 각종 유흥업소가 번창하던 무교동의 코앞에 서민들의 낙지집이 몰려있었다.

환락의 거리 옆에서 한접시에 1백30∼3백원하던 낙지볶음을 안주삼아 찌그러진 막걸리주전자를 기울이는 대학생 샐러리맨 노동자들로 낙지집은 항상 북적거렸다. 낙지집의 「원조」는 지난 63년 유명한 중국요리집 태화관 뒤골목에 들어선 「영일옥」이다. 영일옥의 주인은 남도사람 박모씨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가 개발한 낙지볶음조리법은 아직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속을 뒤집어놓고 혀가 타는듯이 매워 조개탕을 곁들이거나 냉수를 들이키게 하는 낙지볶음은 공기밥의 반찬으로 여성들도 좋아하지만 막걸리 소주안주에는 안성맞춤이다.

낙지볶음을 최고를 쳐주는 목포나 여수에서 올라온 낙지를 토막내 마늘과 고춧가루,파를 듬뿍넣고 조리하는데 주방의 솜씨에 따라 낙지와 「국물」맛은 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영일옥이 있던 종로1가 83번지 일대는 서린지구재개발에 따라 17층짜리 한일그룹 빌딩이 들어섰고 일부는 인도로 편입됐다.

낙지골목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70년대초에는 종로에서 무교동으로 통하던 골목마다 저마다 「원조」라는 간판을 내세운 낙지집이 50여곳을 훨씬 넘어 막걸리와 마늘냄새가 진동했다.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낙지골목은 대학신입생의 오리엔테이션장으로,연인들의 아베크코스로,고향이 그리운 서울 이방인들의 안식처로 명맥을 이어왔다.

암울했던 정치격변기에는 낙지집마다 울분을 토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주당들로 항상 만원이었다. 특히 서릿발같은 긴급조치로 숨죽여살았던 유신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눈물이 찔끔날 정도로 매운 낙지볶음의 맛는 야릇한 대조를 이뤄 매상고가 피크에 달했다.

65년 한국군의 월남파병이 시작되면서 낙지골목일대는 이역만리 전선으로 향하는 장병들이 석별의 정을 나누던 마당이기도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예비역장성 나모씨(58·기업체 부회장)는 지금도 젊은날의 낭만이 그리워 가끔 낙지집을 찾는다.

60년대중반 동료장교들과 함께 낙지골목을 수 없이 드나들다 월남에 파병됐던 나씨는 첫 휴가를 얻어 귀국한 그 길로 낙지골목을 찾았다. 큰 돈은 아니지만 무수하게 깔아놓은 외상값을 갚기 위해서였다.

특별상여금까지 합쳐 2천달러를 한화로 바꿔 넣은 007가방을 들고 낙지골목에 들어선 나씨는 낙지집을 포함한 무교동일대의 외상을 다갚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고 회상한다.

얼굴을 알아보는 업주들이 반갑게 술을 권하는 바람에 황금같은 휴가 3일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75년 도로확장공사를 시작으로 도심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낙지집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원조」 골목에 있던 「미정집」 「유정집」 「대성집」 등은 서린동 114번지일대 인주빌딩 옆골목으로,「실비집」은 길건너 청진동 어귀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낙지집만 27년째인 「미정집」 주인 김재성씨(51)는 『한창 장사가 잘될때는 하루에 4∼5건씩 돈을 받지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며 『소설가 최인호씨,작고한 양주동박사,수필가 조풍연씨 등이 단골손님이었다』고 회상했다. 무교동 낙지집은 사라져가도 그 독특한 매운맛만은 서민들에게 향수로 남아있다.<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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