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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 묻힌 뚝섬경마장의 함성(그때 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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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 묻힌 뚝섬경마장의 함성(그때 그자리)

입력
199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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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다방·식당등도 잇단 폐업/54년 개장후 10년간 제주조랑말로 경주/시민체육공원 조성위해 정지작업 한창서울 지하철2호선 뚝섬역에 내려 성동구 성수동1가 옛 경마장터로 접어들면 지금도 경마팬들의 함성과 경주마의 발굽소리가 들려 올것만 같다.

휴전 다음해인 54년부터 35년간 이곳에서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경마가 열려 2만여명의 열성팬들이 일확천금의 꿈에 웃고 울었다. 그러나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간 89년 9월이후에는 폐허처럼 버려져있다.

본부석 스탠드는 비바람에 씻기우고 애마를 모는 기수들이 골인점을 향해 치닫던 경주로는 공사장 진입로처럼 곳곳이 파헤쳐진채 잡초가 듬성듬성 나있다.

북적이던 경마경기도 사라져 다방 체육관 식당 주유소 등이 잇달아 문을 닫고 경마노인정과 경마파출소만이 한가롭게 남아있다.

54년 5월8일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 자리에 있던 신설동 경마장을 옮겨와 개장한 뚝섬경마장은 미제 맥주깡통을 이어붙인 지붕에 목조스탠드,비가 새는 마사,경주로 안쪽에 있는 채소밭 등이 어우러져 서부영화 무대같은 풍경이었다.

전쟁후라 경주마도 거의없어 제주도 조랑말을 가져다 10여년 뛰게 했고 서울역 청량리역 일대에서 수레끌던 말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50년대 후반에는 미스코리아가 경마장에 초청되고 김광수악단의 반주에 맞춰 당시 인기가수 원방현 명국환이 노래를 부르며 경마팬들을 불러 모았다.

옹색하기 짝이 없는 경마였지만 뚝섬으로 향하는 팬들이 늘기 시작,경마붐이 일게 되자 당시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 주먹들도 눈독을 들여 60년초까지 기수와 조교사를 매수하는 등 경마부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사회체육시설이 전무하다시피하던 시절에 뚝섬경마장은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여가를 즐길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일부 극성팬들중엔 집까지 날리며 패가망신하면서도 끝까지 매달려 「경마폐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경마장앞에서 17년째 돼지갈비집을 하고있는 김동신씨(47)는 『경마에 미친 사람치고 집안이 편한 사람이 없었다』며 『지금도 왕년의 열성팬들은 인근의 TV경마장에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뚝섬경마장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사람은 경마장터 옆 경마노인정에 매일 「출근」하고 있는 이팔룡씨(85)와 정주섭(68)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씨 등은 경마기수가 5∼6명에 붙과하던 해방직후부터 말을 타왔다.

특히 12세때부터 말을 탄 이씨는 당대의 명기수로 요즘도 걷기가 답답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다.

뚝섬경마장이 제법 번듯한 모습을 갖춘것은 74년. 이때까지 경마장은 국민학생들의 소풍장소이거나 뚝섬유원지로 가는 행락객들의 눈요기거리였다.

68년에 없어졌지만 동대문에서 출발하는 전차를 타고 넓게 펼쳐진 채소밭을 따라 경마장으로 가는 길은 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유람길이었다.

원래 뚝섬은 말과 인연이 깊던 곳이다. 현재의 성수동1,2가 지역은 전곶평(살곶이들)이라고 불릴만큼 조선조 초기부터 목장,군대의 열무장,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됐다.

풀과 버들이 무성했던 이곳은 봄철의 낙조와 가을철의 월색이 절경이어서 건너편 응봉낚시터와 함께 한양 10경중의 하나였다.

뚝섬경마장은 내년말까지 시민종합체육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정지작업이 한창이다. 경주로 안쪽에 마련된 미니골프장에는 하루 4백여명의 골퍼들이 몰려들고 있다.

경마장 본관건물 일부는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 변했고 3층짜리 별관사무실에는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입주해 있다.

서울시는 뚝섬경마장의 원형을 유지한채 체육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스탠드와 건물 등은 그대로 두고 1.6㎞ 길이의 경주로는 조깅코스로,외관부지에는 배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등을 내년말까지 만들 계획이다.

뚝섬경마장은 이제 활동사진의 한장면처럼 서민들의 뇌리에서도 사라져간다.<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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