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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잃고 믿음 잃고/상경판매 나섰다 몽땅 털려(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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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잃고 믿음 잃고/상경판매 나섰다 몽땅 털려(등대)

입력
199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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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줄포면 대동리에 사는 농부 김수배씨(54)는 지난 5일 쌀21가마를 싣고 서울 성북 길음3동 딸(21)집에 올라왔다.일년내내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 쌀50가마를 수확했으나 수매가 안되는 바람에 창고에서 변질돼가는 30여가마의 쌀을 피가마르는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무작성 상경했다. 서울에는 사람도 많으니 어디 수소문하다보면 팔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였다.

딸집 뒷마당에 쌀가마를 쌓고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덮은뒤 잠자리에 들었던 김씨는 6일 아침 아연실색했다. 쌀 13가마가 간밤에 감쪽같이 사라진채 꼭꼭 잠가두었던 뒷문이 활짝 열려있었던 것이다. 상황으로 보아 장정 여럿이 아예 뒷문에 차를 대놓고 실어갔음이 분명했다.

힘없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돌아온 김씨는 차가운 겨울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뒷마당에 오랫동안 고개를 떨구고 앉았다.

광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28살때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단 먹을것은 해결이 되고 무엇보다 땅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에서였다.

몇년전까지 김씨는 자신의 판단이 옮았음을 자랑스러워 했다. 여섯마지기로 시작한 농사는 24마지기까지 늘어나 사는 재미가 톡톡했다. 그러나 소위 개방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정부가 수매하고 남은 쌀은 인근 정미소에 맡겨두었다가 먹을 분량만 그때그때 찾고 나머지는 돈으로 찾아썼다. 그러나 이제는 값싼 외국산 쌀수입을 염두에 둔 중간상들이 『상황을 두고 보자』며 외면하고 있다.

농사전망을 비관한 두아들은 모두 외지로 나갔다. 불안해진 김씨는 재작년 『전업을 위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농촌을 지키기 위해서』 서울에 빚을 얻어 작은 전자제품 가게를 얻었다.

믿었던 땅으로부터도 배신 당하고 각박한 세태에 절망한 김씨는 이제 도시생활에 적응해나갈 방법을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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