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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정치(정경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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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정치(정경희 칼럼)

입력
1992.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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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우왕때 이인임과 임견미가 정방의 제조로 권세를 휘두르며 방자했다. 어떤 사람이 최영장군에게 벼슬자리를 부탁했다. 이에 최영이 대답했다. 『네가 상공을 배우면 벼슬을 얻을 것이다』『상공을 배우면』이라는 최영의 말은 「돈을 벌어」 뇌물을 쓰면 벼슬자리를 얻을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권세를 쥔 자들이 뇌물에 움직이는 자들임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상공」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다. 돈을 추구하는 상공은 정치와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주영씨가 현대그룹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새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아마도 군인이 총칼을 들고 정치에 뛰어든 5·16이후 최대의 사건이요,그만큼 파문도 크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금권정치」나 「돈으로 권력을 사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정주영씨는 「참신한 인물」들을 모아 정치를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자신은 잡역부에서 재벌총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과,이제는 현대그룹과 손을 끊었음을 내세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할만한 입장이란 뜻인 것 같다.

하기야 자유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뜻대로 정치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씨의 말대로 「참신한 정치」를 하겠다면 한국에서 첫째 아니면 둘째 가는 재벌로서 정치에 뛰어들어선 안되는게 분명하다.

정씨가 무엇을 목표로 생각하건,기업에서 벌어들인 돈보따리를 풀어 정당을 만들고 네차례 선거에 후보자를 내겠다면 금권정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정경유착의 표본과도 같았던 5공화국때도 없었고,반만년 역사상 없었다.

후진적인 정치의 대표선수로 알려진 중남미지역에서도 「상공」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일은 없다. 한때 미국의 록펠러 뉴욕주지사가 대통령선거에 도전한 일이 있긴 했다. 그러나 록펠러가문은 총주식의 3%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5·16에서 12·12에 이르기까지 역대 군사정권이 내세운 구호나,지금 정주영씨가 표방한 것이나 별로 다를게 없다. 다만 총칼대신 돈보따리가 등장했다는 차이뿐이다.

큰 업적을 세운 기업인으로서 정씨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엄청난 「현대」라는 기업집단의 소유분산과 경영분리로 국민기업화하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정씨는 빈털터리로 정치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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