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있다면 이웃돕는 삶”/“가게마련”꿈 목발짚고 공장에/세식구 부양에 못다한 공부도/방없이 들어간 재활원 내달엔 “자립” 퇴원/장애인가장 고영호씨하반신 마비로 목발에 의지해 걸어다니는 지체장애인 고영호씨(28·한국일보 89년 1월8일자 보도)는 한달후면 18년 동안의 재활원 생활을 마감하고 정식 독립을 선언할 예정이다.
장애인 가장으로써 병든 홀어머니와 어린 두동생을 부양하면서도 방이 없어 공릉동 삼육재활원에서 기거해야했던 고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마포구 망원동 454의 14 단칸 전셋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고씨는 여느 주말과 같이 지난 4일에도 재활원에 찾아가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부터는 정말 혼자 살아야 한다』고 2월에 정식퇴원할 결심을 굳혔다.
그렇다고 고씨가 희망에 부풀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온몸을 짓누르는 것같은 가난의 그늘이 해가 바뀐다고 걷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년전 고씨의 사연이 알려진뒤 받은 혜택은 무의탁 할머니 서말녀씨(73)와 함께 청와대에 초청돼 받은 금일봉과 한국일보를 통해 전달된 성금이 전부였다.
22세되던 86년부터 개미처럼 일해온 고씨에게 가장 큰시련은 90년 5월 다니던 인조다이아몬드 가공공장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아 실직했을 때였다. 전세 3백만원짜리 단칸방에서 고씨의 월급 20만원만 바라보며 살던 가족은 모두 굶어죽을 형편이었다.
82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진뒤 시름시름 앓기만하는 어머니 박춘화씨(52)와 소아마비 여동생 영미(21)를 위해 남동생 영철이(25)가 대학을 휴학하고 돈을 벌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3개월 실직끝에 고씨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액세서리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목발을 짚고 지하철,버스를 갈아타며 출퇴근하는 고생이 또 시작됐다. 월수 40만원은 고씨의 네식구에게 유일한 수입이었다.
주말이면 잠깐 집에 들러 밥한끼 제대로 못먹고 만원버스를 타고 재활원으로 되돌아갈때의 고독감은 더 큰 고통이었다.
헤어져살며 서로 가슴아파하던 고씨 가족은 망원동에서만 몇차례 이사를 다닌 끝에 조금넓은 지금의 전셋방으로 옮겼다.
영미는 마포 청소년학교에서 고교과정을 마치고 봉제공장에 취직했고 영철이는 대학을 졸업,ROTC 소위로 임관했다.
고씨도 지난해 10월 집에서 가까운 액세서리공장 도래미상사(사장 송방헌)로 직장을 옮겼다. 덕분에 고씨는 더이상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에 영미와 함께 집을 나와 걸어서 출근하고 하오 8시께면 역시 걸어서 퇴근한다.
점점 힘들게만 느껴지는 세상살이지만 고씨는 『한푼이라도 더모아 자립할 가게를 마련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다만 고입선발고사에 합격하고도 돈이 없어 일반고등학교에 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그래서 고씨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
삼육재활원에서 생활할때 장애인 농구선수로 최우수선수상을 탈정도로 좋아하던 농구에 대한 열정은 생활의 불안감에 비례해 식어갔다.
평생 남에게 의지해본적 없는 고씨이지만 『해가 바뀌어도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적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립기반을 마련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도우며 살고 싶은 것이 고씨의 희망이다. 3평 남짓한 단칸방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한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며 좋겠다…」로 시작되는 시한수가 걸려있다.<원일희기자>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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