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딛고 중·고생 꿈 부풀어/「가난뱅이 고아」 정두산·두련 남매/2평 단칸방도 이젠 “포근”/생일 고깃국 먹고 “꿈은 아닌지” 글썽3년전 89년 이맘때 빵을 주는 학교에 가고 싶어 방학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던 정두산군(12·서울 한서국교 6년·한국일보 89년 1월6일자 보도) 남매는 중학생,여고생이 되는 꿈에 부풀어 겨울방학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3월이면 중학생이 되는 두산이는 2평이 채 안되는 단칸 전셋방에서 누나 두련양(15·이대부중)의 영어책을 펼쳐보며 발음연습을 하고 있다. 제법 처녀티가나는 두련양은 영락여상에 합격했고 키가 부쩍 자라났다.
마포구 염리동 27의 1 산꼭대기 단칸셋방에서 살던 두산이네는 염리동 8의 113 산중턱으로 조금 내려왔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 안태순씨(71)에 의지해 살던 두산이 남매는 할머니가 아현시장 채소가게에서 버린 푸성귀를 주워와 쌀 몇알을 넣고 끓인 죽을 먹으며 살아야 했다.
두산이는 83년 가을 봉제공장 미싱사였던 아버지가 과로에 폐병까지 겹쳤는데도 돈을 아끼느라 병원 한번 못가본채 숨지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간뒤 도시락도 싸가지 못해 「가난뱅이 고아」라는 놀림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이런 사연이 보도된뒤 각계로부터 몰려든 따스한 온정의 손길은 절망뿐이었던 두산이 가족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코흘리개들이 때묻은 돈을 모은 돼지저금통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익명의 시민들로부터 『용기를 잃지말라』는 격려와 함께 성금이 전달됐다.
대기업들도 동참해 (주)라이카에서는 두산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월 5만원씩 보내주기로 약속,지금까지 계속 지원하고 있으며 두산이와 이름이 같은 두산그룹은 전세금 3백만원을 선뜻 대주었다.
손주들을 거두느라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새마을 취로사업 등에 나선 할머니는 갑작스런 주위의 도움에 생활보호 대상가족으로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4만여원의 보조금과 정부미 30㎏이 중지되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났었다고 한다.
설날에도 간장 한종지로 손주들의 끼니를 때워주면서 목에서부터 솟구치는 서러움을 참아야 했던 할머니는 지난해 9월26일 두산이의 열한번째 생일에 하나뿐인 손자의 꿈을 이루어주었다.
식성이 좋은 두산이는 김이 무럭무럭나는 불고기와 자장면을 실컷먹는 꿈을 꾸곤하다 할머니가 돼지고기 두근을 사와 끓여준 국을 정신없이 먹으면서 믿겨지지 않는듯 누나에게 『뺨을 꼬집어 달라』고 말해 할머니를 또 울렸다.
비록 두평도 안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산중턱까지 내려와 6백만원짜리 전셋방으로 옮겼고 두산이와 두련이를 위해 작은 책상도 하나 장만했다.
지난해 봄부터 동사무소의 배려로 취로사업중 가장 쉽다는 벽보뜯기를 맡은 할머니는 경사진 고개를 오르내리기가 숨이 차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손주들에게 새옷을 입혀주려고 일을 빼먹지 않고있다.
3년전 보다는 나아졌지만 두산이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 한대 밀물처럼 몰려들었던 온정의 손길도 지금은 뜸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간간이 찾아오는 익명 독지가들의 격려를 두산이는 가슴속에 깊이 담아두고 있다. 지난해 12월초에도 회사원이라고만 밝힌 남자가 찾아와 『용기를 잃지 말라』며 회사에서 모금한 50여만원이 든 예금통장을 손에 쥐어주고 갔다.
할머지는 사춘기에 들어선 남매가 좁은 방에서 함께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불평 한마디없이 사이좋게 집안일을 해주는 손주들이 대견하다고 말한다.
얼굴도 보지 못했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왜 찾아와 도움을 주고 학비를 보태주고 했는지를 이제 알게된 두산이는 『빨리 어른이 되어 어려운 이웃들을 돕겠다』고 다짐하고 있다.<송용회기자>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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