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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야르 영욕의 유엔총장 10년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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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야르 영욕의 유엔총장 10년 마감

입력
1992.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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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무명서 첫 출발… 미소 각축속 한계절감/탈냉전 힘입어 인질해결·위상강화 자부심【유엔본부 AFP=연합】 동서 긴장기에 유엔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사무총장이 취임 10년만에 성공과 실패의 기록을 동시에 남기고 지난달 31일 사임했다.

미소가 서로를 겨누고 있던 81년 1월 임기 5년의 유엔사무총장에 처음 선출됐을 당시만해도 페레스 데 케야르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페루의 외교관이었고,미소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에 휘말려 유엔은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었다.

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저지에 나섰을때 케야르는 유엔사무총장직의 한계를 깨달았다. 이 전쟁은 그가 두번째 임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떠나던 31일까지도 계속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구 소련 공산당서기장으로 선출된 85년 유엔은 오랜 무기력에서 벗어났다. 소련의 새 지도부와 유엔 및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적인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고 전쟁을 저지,중단시킨다는 창설당시의 목적을 수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두번째 임기중 소련군은 유엔 감시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고,이란과 이라크는 역시 유엔 감시하에 8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며,나미비아는 유엔의 각별한 관심속에 독립을 쟁취하게 됐다.

또한 앙골라와 캄보디아가 서부 사하라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했고,유엔은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신중한 성격의 케야르 사무총장도 보다 적극적으로 변모하게 됐다.

한 외교관의 지적처럼 그는 걸프전쟁의 발발을 막지 못했으며,라이베리아와 유고슬라비아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데 실패한 점에 대해 비난도 받고 있다.

그러나 31일 저녁 케야르 전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본부 38층의 사무실을 떠나면서 레바논의 서방 인질문제를 해결하고 망년회에 빠지면서까지 엘 살바도르의 12년 내전을 종식시킨데 대해서는 만족을 느낄만 했다.

71세의 노 외교관은 「나는 이제 자유인이다. 나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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