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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관/변사 대사따라 민중 일희일비(그때 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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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관/변사 대사따라 민중 일희일비(그때 그자리)

입력
199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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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상영후 일 감시 더해/당대주먹 김두한의 본거지/88년이후 나이트클럽·요리점 들어서도시는 변한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며 꿈틀대기도 하고 성쇠를 거듭하면서 역사의 증인으로 남기도 한다.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고 다듬어지면서 우리가 즐겨찾던 명소와 거리는 어느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소설의 무대나 영화의 세트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한 시대의 낭만과 체취가 남아있는 추억의 「그때 그자리」를 되짚어 본다.<편집자주>

서울 종로2가. 화려한 쇼윈도가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고 하루종일 북적이는 인파 사이를 빠져 YMCA건물옆 골목으로 몇걸음만 들어가면 별천지 같은 정적속에 2층짜리 허름한 건물이 지탱하기도 힘든 모습을 하고 서있다.

여기저기 갈라진 틈과 변색된 하늘색 외벽을 뚫고 아무렇게나 삐져나온 배관이 더욱 초라해 보이는 이 건물이 장안에서 손꼽히던 영화관으로 갖가지 「명성」을 간직한 우미관이란 사실을 아는 연령층은 30대 이후이다.

82년말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한 뒤 지금은 1층에 성인 나이트클럽,2층에는 중국음식점 금진각이 들어서 있어 주변에 있는 「우미여관」 「우미 이발소」 등의 간판만이 옛날 우미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더구나 우미관의 「본적지」인 지금의 종로서적뒤 관철동의 우미관은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홍성유씨의 「장군의 아들」 속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단성사(초기에는 대륙극장)와 화재로 없어진 인사동의 조선극장과 어깨를 겨루던 우미관은 특히 서민들이 즐겨찾던 곳이다.

무성영화시대에는 비록 나무의자에 벙어리 화면이지만 2층 벽돌건물안에 빽빽이 들어찬 관객들은 변사의 「그랬던 거디었다」식의 목소리에 일희일비하며 넋을 잃곤 했었다.

「우미관에서 활동사진 한편 보지 않은 서울구경은 헛것」이라 할 정도로 이 땅의 외래문물은 우미관의 화면을 통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초로의 올드 팬들은 우미관에서 본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시대」 시리즈,「카추샤」 「파우스트」 「몬테크리스토백작」 등 무성영화를 변사가 읊어대는 대사속에 본 것을 추억의 파노라마 속에 간직하고 있다.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상영됐을 때는 변사가 반일적인 표현을 이따금 사용해 일본고등계 형사들이 항상 배석했다.

우미관은 「장군의 아들」 김두한씨의 본거지로 장안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주먹」들의 고향이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우미관을 중심으로 주변 상가를 장악했으며 부하들은 영화제목이 적힌 광고판을 들고 종로일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김씨의 1급 참모였던 박원선씨(62·건축업)는 『김씨가 종로를 장악했을 때는 일본사람들이 우미관 근처 다니기를 꺼려할 정도였다』며 『김씨는 말년에도 이곳에 가끔씩 들러 후배들과 술자리를 같이하며 회포를 풀곤 했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우미관에 표를 사지 않고 그냥 들어갈수 있어야 알아주는 주먹이었다』며 『극장 앞 공터에서 벌어지는 편싸움은 한편의 액션영화와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59년 화재로 YMCA 뒤로 옮긴 우미관은 좋은 시설의 개봉관이 속속 생겨나면서 3류극장으로 전락,82년 11월말 적자가 누적돼 폐업하고 주인도 빌딩 임대회사인 (주)신창기업으로 넘어갔다.

우미관건물은 4년 뒤인 86년초 내부를 완전히 바꿔 1층과 2층에 스탠드바와 롤러스케이트장이 문을 열었으나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스탠드바는 88년말 성인 나이트클럽으로,롤러스케이트장은 지난해 9월 지금의 중국집으로 바뀌었다.

우미관 건물을 임대,운영하는 박재호씨(40)도 고교시절 김두한을 흠모하며 종로거리를 누비던 「어깨」 출신이다.

일제 때는 억눌린 민중의 울분을 토해내는 장으로,60년대 이후에는 가난한 연인들과 샐러리맨들이 화면 속의 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던 우미관은 세월의 수레바퀴와 함께 추억의 한구석으로 밀려나 있다.<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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