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의식 국내경제 침체 타개책/탈냉전후 아태위상 정립 목적도【워싱턴=정일화특파원】 30일 앤드류공항을 떠나 11일간 호주·싱가포르·한국·일본을 방문하는 부시 미 대통령의 92년도 첫 정상외교는 탈냉전시대의 대아시아 위상정립과 상호 경제협력관계 증진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한국전·월남전을 통해 아시아 안보에 깊숙이 관여했던 미국으로서는 소련붕괴후 이 지역과의 안보유대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북한이 핵개발계획을 포기하지 않은채 핵감시협정조인 임무를 끝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결국 미국은 이라크에 버금가는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하자면 우선 아시아 각국의 이해를 얻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 비춰봐서도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방문은 그만큼 중요하다. 마침 부시가 워싱턴을 떠나기 3일전인 27일 필리핀은 지난 1백년 가까이 미국이 사용해오던 수빅만 해군기지를 92년내에 철수하라고 통보한 터여서 만일의 경우 미군 주둔지역을 다른 아시아국가에서 물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9일 아시아순방 외교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태평양 세력임을 여러번 강조했다.
「시장개방순방」으로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순방 목적이 돌변한 것은 다분히 국내사정 변화 때문이었다.
90년 6월부터 내리막 길을 걷던 미국경제는 지난해 2월부터 경기회복에 들어가게 됐다는 일부 분석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호전되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인 정책은 『일자리,일자리,일자리』(Job,Job,Job)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순방에 이 최우선 정책 과제를 추가하지 않으면 안됐다. 한때 대통령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며 최근 상원의원 후보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바 있는 실업인 스타 리 아이아코카 크라이슬러자동차 사장을 비롯해 21명의 저명실업인까지 대동하고 아시아순방 길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 대통령이 실업인을 순방외교에 대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순방국들에게 걸려있는 미국과의 쟁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호주(12.31∼1.4)
보브 호크총리 후임으로 지난 19일 새 총리직에 임명된 폴 키팅(47) 정부에 대해서는 부시 대통령이 강력한 경제압력을 가할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미국은 호주에 대해 연 40억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으며,자동차·섬유·목재제품 등 미국이 관세인하를 요구하는 품목들에 대해 모두 92년 또는 93년 등의 시한을 매겨 이를 조정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놓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기구를 중심으로 아시아자유무역지대(Asian Tax Free Zone) 개념과 같은 보다 장기적인 경제협력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시드니·캔버라·멜버른 등 주요도시를 두루 방문한다.
○싱가포르(1.4∼1.5)
지난 11월말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순방 일정이 짜여질때 인도네시아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대표국으로 순방일정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마침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아프리카와 남미의 5개국을 방문하게 돼있어 싱가포르를 방문지에 넣게 됐다.
싱가포르는 대미수출 98억달러,수입 80억달러(90년)로 연 18억달러의 대미 흑자를 내고 있지만 담배·술 등의 「비건강물품」에 대한 특별세 외에는 무관세이기 때문에 아무런 무역문제가 남아있지 않다. 싱가포르는 이미 필리핀 수빅만에서 미 해군기지가 철수되면 장소가 허용하는한 미 해군의 수리,정박을 허용하겠다고 이미 밝힌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 각국이 싱가포르의 자유관세제도를 본받도록 촉구할지 모른다.
○한국(1.5∼1.7)
한국은 그동안 담배,쇠고기,지적소유권,보험 등 미국과 날카롭게 맞서고 있던 문제를 거의 다 해결했으며 쌀시장개방을 제외하고는 개방의 시기와 비율의 추가교섭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대미무역 역시 수출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반면 대미수입은 계속 늘어 91년에는 드디어 수입 1백90억달러,수출 1백85억달러로 무역역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91년들어 한미 항공협정,군사기술 보호협정 등을 체결했고 이번 부시 대통령 방문을 통해 한국이 88년이래 계속 요청해온 한미 과학기술협정 체결에 서명할 예정이어서 이에 상응한 추가수입 개방조처를 요구할지 모른다.
북한이 핵사찰을 지연하거나 거부할 경우에 대비한 구체적인 대책도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1.7∼1.10)
미국이 일본에 지고 있는 연 4백1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무역적자는 1.4분의 3이 일제 자동차 수입에 따른 결과이다. 현재 일본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9%,반면 미국차의 일본시장 진출률은 0.5%에 머물고 있다.
아이아코카 크라이슬러 회장같은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일제차의 대미 수출자체를 규제하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일제차 수입은 그냥 두더라도 미제차 대일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무튼 부시 대통령이 호주 및 아시아순방을 떠나면서 자신의 순방목적이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있음을 선전했고 이것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먹혀 들고 있는 현실은 그의 재선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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