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걸프전 총괄 연출자”/시아누크 「캄」 내전 해결사/콜 EC통합 지휘·일본 위상 급상승 “주목”91년의 세계를 뒤흔든 주역들은 누구인가.
91년은 걸프전으로 시작해 소련붕괴로 끝난 「대변혁의 한해」였다. 따라서 이들 대사건의 배후에 있는 주역들 역시 그 어느해보다 역동적이고 두드러져 보였다.
우선 『소련을 빼고 20세기말을 논하지 말라』는 애기가 있을 정도로 소련붕괴는 세계변혁의 진앙지였고,그 중심부엔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우뚝 서있었다. 두 거인은 거대제국을 소멸시키고 역사를 뒤바꾸면서도 「피의 대가」를 치르지 않게한 무혈혁명의 공모자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소련을 질곡에서 구출했으며 동서 화해의 세계질서를 연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소련인들의 식탁에 충분한 빵을 올려주지 못했다. 또한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를 오가는 우유부단함으로 쿠데타와 실각을 자초했다.
그래서 『고르비는 위대한 사상가였지만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반면 옐친은 지난 8월 쿠데타당시 목숨을 건 항쟁으로 소련역사의 물줄기를 움켜쥐었다. 그 이후의 숨가쁜 정국에서도 공산주의 종말과 소련해체에 오차없는 메스를 가했다. 그 결과 소련의 새 지도에는 독립국가공동체가 자리잡게 됐고 옐친은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됐다.
이제 그는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 「미완의 주역」이다.
소련붕괴는 세계질서가 당분간 미국 일극화로 고정될 것임을 의미한다. 사실 미국 일극화현상은 소련사태전 미국의 걸프전승리때 이미 예견됐었다. 걸프전의 배후에는 슈와츠코프 다국적군 총사령관,파월 합참의장 등 화려한 얼굴들이 있지만 주연은 이들을 총괄한 부시 대통령이었다.
부시는 서두르지 않으면서 단호하게 전쟁을 이끌어 미국의 승리를 창출했다. 또한 승리의 자족감에 머무르지 않고 전승의 여세를 국제문제 해결의 주도력에 연결시키는 현실감각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외치에도 불구하고 국내경기 침체 등 내치 실패로 반쪽의 성공만을 거두어 연말에 부랴부랴 아시아 순방에 나서고 있다.
부시와 대적했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지구촌을 뒤흔든 인물중 하나였다. 『미군은 피의 바다에서 헤엄칠 것』 『중동에는 더이상 미 제국주의가 없다』 등의 호언은 한때 서방의 간담을 서늘케했다. 쿠웨이트점령 당시 후세인의 야망은 중동제패로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냈었다. 하지만 걸프전은 그의 야망을 「한여름밤의 꿈」으로 전락시켰고 이라크 젊은이 수십만명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권통치를 자행하고 호시탐탐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영원한 분쟁지인 중동과 관련지어 볼때,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베이커는 중동지역을 수없이 드나들며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을 마드리드 중동회담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는 중동 외에도 소련·북경·유럽·아시아 각국 등을 누비며 미국 일극화의 첨병역을 충실히 해냈다.
91년에는 유럽 또한 요동쳤다. 동쪽 저편에서는 유고내전이라는 파열음이 끊이질 않았고,서쪽은 통합이라는 하모니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파열음의 주역은 유고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는 대세르비아주의 신봉자로서 민족·종교가 다른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의 독립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의 지시하에 유고연방군은 크로아티아 영토의 30%를 차지한 상태이며,독일을 위시한 서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유혈내전의 고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반면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EC통합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역을 해냈다. 콜 총리는 통일의 저력과 마르크화의 위세를 바탕으로 유럽통합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지난 10월16일에는 미테랑과 함께 독·불 통합군 창설을 발표해 미국과 NATO를 경악시켰으며,12월의 마스트리히트 회담에서 통합회의론자인 메이저 영 총리를 경제통합의 틀에 묶어놓았다.
시대착오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벗어던지려는 데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과 캄보디아내전의 해결사역인 노로돔 시아누크공도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데클레르크는 지난 6월 주민등록법을 폐지한데 이어 12월20일에는 흑인참정권 허용을 다룰 헌법개정회의를 개최했다.
시아누크공은 지난 11월14일 13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내전의 캄보디아에 화합을 뿌리내리기 위해 귀국했다. 그는 4대 정파로 구성된 최고민족회의(SNC) 의장으로서 총선 실시전까지 과도통치기구를 이끌고 있다.
한편 집합체로서의 일본도 91년과 향후 90년대의 주역으로 꼽을만하다. 미국을 넘보는 경제규모,세계최대무역흑자국,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노리는 심상찮은 움직임은 향후 세계정치 기상도에 적잖은 난기류를 드리울 전망이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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