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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기분(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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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기분(장명수 칼럼)

입력
199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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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비교적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모두들 『연말기분이 전혀 안난다』고 말하면서 이를 아쉬워하기 보다는 다행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최근 몇년간 연말연시가 계속 차분해지고 있는 것은 불경기 탓도 있고,연휴가 신정·구정으로 나뉜 탓도 있다. 또 명절이 점점 더 「특별한 날」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고,허례허식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경기야 나쁜 것이지만,나머지 이유들은 나쁠것이 없고,불경기 속에서 연말연시의 부자연스러웠던 흥분을 많이 진정시킬수 있다면 그것도 내일을 위한 좋은 준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가 교회의 축제를 넘어 만인의 축제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부터였다. 전쟁이 끝나고,몇년간 재건에 진땀을 흘렸으나 국가는 여전히 가난했고,젊은이들은 축제에 목말라있던 시기였다. 4·19혁명으로 한번 사슬을 끊었던 젊은이들의 목마름은 엉뚱하게 크리스마스에 폭발하곤 했다.

62년,6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시청앞·광화문·종로를 가득 메운 수십만 인파가 저마다 뿔피리를 불며 요란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을때 나도 그중의 한 젊은이였는데,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때 왜 우리가 뿔피리를 불어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 시절의 우리들처럼 축제에 목마른 젊은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그 우스꽝스런 광난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 이제 크리스마스를 교회로 되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크리스마스는 교회로,연말연시는 가정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80년대의 많은 폭발적인 사회현상의 원인은 지난날 우리의 결핍과 닿아있다. 물자의 결핍,자유의 결핍,문화의 결핍이 한으로 맺혀있다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던 것이다. 단군이래 처음 보릿고개에서 해방되고,세계를 향해 가슴도 펴보고,자가용자동차에 가족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려보고,대통령욕도 할수있는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됐으니 혼란은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올해 연말기분이 별로 안난다는 것은 70년,80년대의 한풀이식 흥분이 가라앉아가고 있다는 좋은 징조이다. 「거품경제」의 거품이 가시면서 들떴던 사회도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경제적 성장과 침체를 겪으며 우리사회의 의식은 좀더 성숙해지고 있다.

차분한 연말을 거쳐 차분한 1992년을 보내야 한다. 차분함이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야할 제일의 미덕이다. 불경기로 가라앉은 연말을 우리는 진지하게 다시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편집국 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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