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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소역사/이영성 국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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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소역사/이영성 국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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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의 마지막달은 신문편집자들에겐 곤혹스런 시간이었을 것이다. 소련의 종언이라는 대사건을 몇자 안되는 제목으로 장엄하게 압축하기 위해 고심을 하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이다.마치 수사의 전시장처럼 신문제목들이 다양했지만,그 저변에는 「냉전은 끝」이라는 공통된 맥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 공통분모속에는 쉽게 눈에 띄는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오차」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문마다 달리 쓴 소련역사의 기간이었다.

신문마다 각양각색이었지만 대개 74년이나 69년으로 갈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다 맞다.

레닌의 볼셰비키가 10월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1917년을 소련의 시발점으로 보면 소련역사는 74년이다. 반면 소비예트사회주의연방(USSR)이라는 국호가 공식사용되기 시작한 1922년 12월을 기원으로 삼는다면 소련의 나이는 69세이다. 또 비록 소수설이긴 하나 러시아 차르체제가 굶주린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의 봉기로 무너진 1917년 2월을 기산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17년과 1922년 사이의 공백은 내전 기간이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차르체제의 장교 등 백군의 반혁명무력항쟁 등이 이 공백기간중 벌어졌다. 또한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농민들의 항쟁도 거세게 일어났다.

내전 초기에는 백군이 우세했고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러시아 영내에 군대를 파견해 볼셰비키정권은 비밀경찰조직 체카를 조직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적군은 트로츠키의 뛰어난 영도로 백군을 압도했다.

결과를 보면 당연한 수순의 진행처럼 보이지만,그 당시에는 누가 모스크바를 장악할지 불확실했었다.

소련역사의 시발점에 대한 혼돈이 생길정도로 불확실했던 5년이 지금 재현되는 듯하다. 비록 독립국가 공동체가 출범하긴 했지만 숱한 난관으로 인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불확실한 기간이 5년일지 그 이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향후 소련사태를 예단하거나 섣부르게 대응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련 나이에 대한 혼선이 우리에게 소련사태의 변화에 대한 신중하고 치밀한 분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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