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유죄 항소심은 무죄,한사건을 놓고 판결이 이렇게 엇갈렸다. 대법원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의 취지」로 이 사건을 서울고법에 되돌려 보냈다. 결론을 앞세우자면 우리는 고문근절을 천명한 사법권의 결연한 의지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생동하는 법정신과 사법의 독립성을 확인할 수 있기에 그렇다.인권의 기반을 흔드는 고문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극악의 가혹행위이다. 권위주의의 강압으로 일관한 5공정권은 박군의 고문치사로 그나마 취약했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물러갔다. 탁 치니 억하고 숨졌다는 허망한 조작과 사기극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러나 그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엔 아직도 미흡하고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제야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고문당사자 만이 아니라 경찰총수에도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 사건은 수사 당시부터 여러모로 의혹과 비판이 제기 되었다. 검찰은 세차례나 반복수사를 거듭하며 진상규명보다 확대 방지에 주력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후 88년 봄,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자 형량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나돌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국민의 상식과 법관념에 의외라는 생각과 비판이 치열라리만큼 고조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대한변협인권위는 피고인의 변호를 말았던 변협회장의 사퇴권고를 결의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음은 기억해 둘만하다.
원심의 무죄선고를 깬 대법원은 중요 참고인과 피의자의 진술을 채택하지 않은 것이 명백한 잘못임을 밝혔다. 이러한 지적은 경찰고위 간부들이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조작내지 은폐하려던 의도를 확실하게 가려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신뢰하고 진실을 밝히는 의지에 공감을 아끼지 않으려는 것이다.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지는 기본권의 침해와 고문과 같은 가혹행위는 국가권력 스스로의 견제와 제동이 아니면 국민의 저항으로 근절될 수가 있다. 인권의 보장과 확대가 결국은 민주화의 요체이다. 이러한 민주화는 실행의지에 달렸다. 제도와 구호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화 6공」의 인권상황은 아직도 불만의 대상이다. 시각에 따른 의견이 차이가 있다해도 공권력에 의한 가혹행위가 뿌리 뽑혔다고 감히 장담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의 상황이기에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한결 돋보인다.
고문이 뿌리째 사라지지 않는한,민주화나 문명인의 명예는 얼굴을 들지 못한다. 가혹행위는 곧 자살행위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반드시 응징이 가해져야 고문이 추방된다. 대법원의 강한 의지가 고문근절과 인권 침해방지의 표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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